경찰은 ‘눈 뜬 장님’이었다. 코 앞에 있는 범인을 조사하고도 지나쳤는가 하면 연인원 3만명을 동원하고도 실종 현장에서 20m 떨어진 곳에 있는 시신을 찾지 못했다. 양지승(9ㆍ제주 서귀북초등학교 3)양 유괴살해사건 초동 수사의 허점이 드러나면서 비난이 빗발치고 있다.
제주 서귀포경찰서는 지승양이 실종됐다는 신고를 받은 이튿날인 지난달 17일 지승양의 사진을 언론에 공개하며 연인원 3만 여명을 동원해 지승양 집 주변과 제주 전역의 빈 집, 과수원 등을 수색했지만 아무런 단서도 잡지 못했다.
하지만 지승양 실종이 장기화하자 이택순 경찰청장이 특별수사팀 운영지시를 내린 이틀만인 24일 오후 5시40분께 지승양이 살던 아파트에서 70m 떨어진 곳에서 지승양 시신을 찾았다. 시신이 발견된 현장은 실종사건 수사본부로부터 2㎞밖에 되지 않고, 지승양 실종 현장인 주차장에서는 20m 떨어져 있다. 경찰의 실종자 수색이 엉터리였음을 확인한 셈이다.
경찰 관계자는 “지승양 시신이 발견된 곳은 철저하게 수색하기 힘든 남의 집 앞 마당이었다”며 “더구나 시신이 비닐 등으로 3중 밀봉된 데다 다른 쓰레기들과 함께 있어 경찰견이 냄새를 맡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허술한 수사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사건 직후 경찰은 지승양이 실종된 곳 주변에 사는 피의자 송모(49)씨를 탐문하고도 그냥 넘어갔다. 송씨는 1993년 3세 남자아이를 납치하려다 미성년자 약취유인죄로 처벌을 받는 등 23차례의 전과가 있다. 송씨의 거주지나 주민등록번호만 확인했어도 유력한 용의자임을 금세 알 수 있었는데 경찰은 그가 주민등록상 제주 거주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지나쳤다.
경찰 관계자는 “송씨의 주소가 경기 안산시로 돼 있었던 것을 모르고 탐문 대상자를 제주거주자로 한정했다”며 초동수사 허점을 인정했다. 경찰은 사건 발생 직후 금품을 요구하는 협박 전화가 없었다는 점을 들어 계획적인 납치 또는 단순가출 사건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수사했다.
경찰은 25일 송씨가 지승양을 유인, 성추행한 뒤 범행사실이 들통날 것을 우려해 목졸라 살해한 사실을 확인하고 송씨를 살인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송씨는 이날 오후 감귤과수원에서 실시된 현장검증에서 살해 순간 등 당시 상황을 태연하게 재연, 지승양 유족과 주민들의 분노를 샀다.
광주=안경호기자 khan@hk.co.kr박경우기자 gw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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