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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FTA 현장에 가다/ <下> 성공의 기회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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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FTA 현장에 가다/ <下> 성공의 기회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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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4.25 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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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원단 수출량은 500만달러에 그치겠지만 내년엔 2,500만달러까지 늘어날 겁니다.”

윤병은 대우인터내셔널 부사장은 요즘 미국 시장 전략을 새로 짜느라 밤잠을 설쳐야 하는 데도 신바람이 난다. 한미 FTA로 관세가 철폐되면 대우인터내셔널 부산공장에서 생산되고 있는 자동차 시트용 원단과 가구용 원단의 미국 시장 경쟁력이 높아질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한미FTA로 인해 10~15%의 관세가 사라지게 되면 현재 미국 시장에서 10% 정도 싼 중국산과 한 번 겨뤄볼 만 하다는 게 윤 부사장의 판단. 그는 “벌써 N사나 Q사 같은 미국 바이어들의 문의가 잇따르고 있다”며 “한미 FTA를 계기로 판매망도 혁신하고 마케팅도 더욱 강화함으로써 회사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키는 기회로 삼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미 FTA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무역전사들의 발걸음이 바빠지고 있다. 한미 FTA가 장밋빛 미래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새로운 기회임엔 틀림없다. 한미 FTA의 과실은 결국 준비하고 노력하는 자의 것이 될 것이다.

11년전부터 LA에서 원단을 수입해 의류제조업체에게 공급하고 있는 일을 하고 있는 성우텍스타일의 최승호 사장도 한미 FTA가 발효되면 현재 50%인 한국산 원단의 비중을 크게 늘릴 계획이다. 10% 안팎인 관세가 사라져도 중국산에 비해서는 여전히 가격이 높겠지만, 이미 한국산 원단에 대한 품질이 어느 정도 인정되고 있는 만큼 의류제조업체들을 설득할 수 있다는 게 최사장의 판단이다. 최 사장은 “개성공단에서 가공한 원단과 의류가 한국산으로 인정될 경우의 파괴력은 엄청날 것”이라며 크게 기대했다.

김기명 최신물산 사장도 요즘 잇따른 회의와 바이어 방문에 통 정신이 없다. 구체적 관세 인하폭을 묻는 바이어 문의에 대응하다 보면 하루 24시간도 짧다. 내로라하는 의류 업체들이 모두 원가절감을 위해 해외로 생산 설비를 옮길 때도 그는 ‘국내에 기반이 없으면 절대 롱런할 수 없다’는 신조로 자리를 지켰다. 해외에서 생산하는 경우도 없지 않지만 그래도 아직은 국내 생산 비중이 더 크다.

김사장은 “어차피 관세가 철폐된다 해도 중저가 제품은 중국산에 비해 경쟁력이 없는 만큼 중고가 제품을 취급하는 노드스트롬(Nordstrom)이나 메이시(Macy’s) 등 미국 대형 백화점을 주로 공략할 계획”이라며 “한미 FTA와 한국 의류 산업의 고도화는 이제 시작일 뿐”이라고 밝혔다.

16~18일 미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마켓센터에서 열린 LA국제섬유쇼에도 적지 않은 한국 업체들이 참가, 제품 홍보와 함께 앞으로 한미 FTA가 미칠 영향 등에 대한 정보를 나눴다. 지난해 미국에 1,000만달러의 인조견과 원사 등을 수출한 삼일방직 관계자는 “한미 FTA를 계기로 미국쪽 수출량을 더욱 확대하기 위해 내년 봄ㆍ여름 트렌드 조사 차원에서 행사장을 찾았다”고 말했다.

한 재계 고위인사는 “모든 경제 활동에는 위기와 기회가 공존하는 법”이라며 “한미 FTA도 결국 얼마나 대비하느냐에 따라 위기가 될 수도 기회가 될 수도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일각에선 한미 FTA를 단순히 상품 교역 차원에서 보지 말고 장기적 국가 전략 및 한ㆍ중ㆍ일 경제 구도 차원에서 재조명해볼 필요성도 제기하고 있다. 중국과 일본이 하지 못한 미국과의 FTA를 한국이 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 이를 잘 활용하면 일본과 중국 사이에 낀 ‘샌드위치 신세’에서 중국과 일본을 아우르는 ‘센터의 지위’로 올라설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 조언이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 심남석 차장은 “미국이 우리나라와 FTA를 체결한 것은 장차 한일 FTA가 될 경우 일본 시장으로 우회 진출할 수 있는 데다 중국의 급성장을 견제할 수 있는 카드로도 한국의 잠재력이 매우 유효하기 때문”이라며 “이러한 미국의 전략을 적극 활용, 우리의 이익을 극대화할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한 때”라고 강조했다.

LA=박일근기자 ikpark@hk.co.kr

■ FTA 명암 사례

한미 FTA에 대한 찬반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이젠 준비와 실천이 한미 FTA의 성패를 좌우할 뿐이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나라보다 먼저 미국과 FTA를 체결한 국가의 성공 및 실패 사례들은 되새겨볼 부분이 적지 않다.

멕시코 꼬아우일라주의 데님(주로 청바지와 면직물에 사용되는 질긴 원단) 생산업체인 CIPSA는 1994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체결로 관세가 철폐된 뒤 대미 수출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경우다.

1992년 7,300만달러에 불과했던 CIPSA의 매출은 2002년에는 2억3,800만달러까지 늘어났다. 비결은 중국산이 따라올 수 없는 내열성 데님 개발에 주력한 것. 아무리 관세가 없다고 해도 가격으론 중국산과 경쟁할 수 없다고 판단, 제품 차별화를 이룬 것이 효과적이었다.

멕시코의 가전업체 마베(Mabe)는 ‘공격이 최선의 수비’란 전략으로 성공한 케이스다. NAFTA 체결 이후 일각에선 멕시코 가전산업이 얼마 못 가 단순 조립기지로 전락할 것이라는 우려가 많았다. 그러나 마베는 NAFTA 출범으로 미국ㆍ캐나다로 수출하는 세탁기와 냉장고에 대한 2.9~3.6%의 관세가 폐지되자 적극적 해외시장공략에 나섰다.

마베는 먼저 캐나다 전국 유통망을 확보하기 위해 2005년 캐나다의 대표적 전자업체 캠코(Camco)사를 5억달러에 인수했다. 또 미국 GE에겐 가스난로 사업을 먼저 제안하며 전략적 제휴를 맺었다.

이를 통해 마베는 GE 판매망을 활용, 자사제품을 전 세계에 판매할 수 있었다. GE와 경쟁하는 대신, GE를 파트너로 삼아 북미는 물론 중남미, 유럽으로까지 시장을 확대하는 데에 성공한 것이다.

벤처기업들에게도 한미 FTA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캐나다 온타리오주의 환경정화 벤처기업 ETI는 NAFTA를 가장 잘 활용한 기업 중 하나다. 주로 오염된 지하수를 정화하는 투과성반응벽(PRB)을 만드는 이 회사는 1992년 설립 이후 2년 동안 단 2건의 수주실적만을 올렸지만 NAFTA 체결 후 미국에서 100건이 넘는 일감을 따내는 데 성공했다.

처음에는 통상환경변화가 불안하게 느껴졌지만, 기술적 자신감을 바탕으로 미국 특허 취득, 미국 환경 기준 부합하는 제품 개발, 미국 기업과 합작 등에 힘을 쏟은 것이 주효했다.

캐나다의 산불감지기 제조사인 FTS도 NAFTA 이후 미국으로부터 수입하던 주요 부품류에 대한 관세폐지가 가격경쟁력으로 이어질 것으로 판단, 공격적 마케팅을 펼쳐 내수기업에서 수출기업으로 변신했다. 또 미국 정부조달시장에도 적극 참여했다.

호주 바이오테크 연구개발(R&D) 전문기업 CRO는 미ㆍ호주간 FTA 체결 직후 미국 제약사인 스카이파마로부터 300만달러 규모의 의약품 R&D 프로젝트를 수주했다. 미국에 지사를 설립, 미국 기업들에 비해 30% 이상 저렴한 임상실험을 적극 선전한 결과다.

물론 모두 성공한 것은 아니다. 칠레의 청바지 제조사인 A사는 미국과 FTA 발효를 염두에 두고 미국 수입업체와 접촉,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으로 2003년 1,000달러에 불과했던 미 수출액을 2004년 무려 371만8,000달러까지 느렸다.

그러나 미국 수입업체는 A사의 품질에 문제가 생기자 2005년 갑작스레 거래선을 변경했고, A사의 2005년 미 수출액은 다시 23만4,000달러수준까지 급락했다. 제품이나 서비스 경쟁력을 수반하지 않는 가격인하 효과는 일시적일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례다.

박일근기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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