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9만5,000여명이 소속된 국내 최대 의사 단체인 대한의사협회가 불법 로비를 통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의원들을 지속적으로 관리해온 사실이 드러났다. 국내 이익단체의 음성적인 국회 로비 행각이 구체적으로 밝혀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국일보가 23일 입수한 장동익 대한의사협회 회장의 발언록과 45분 분량의 음성파일에 따르면 의사협회는 산하 조직인 한국의정회(이하 의정회·회장 박희두)를 통해 연말정산 간소화 적용을 막아달라는 취지로 국회 보건복지위 소속 한나라당 A의원에게 1,000만원을 현금으로 줬다.
한나라당 의원 2명과 열린우리당 의원 1명에겐 200만원씩 매달 600만원을 지원하는 등 의원들의 정치 성향과 개인별 특성에 따라 조직적으로 불법 로비를 벌여왔다. 의정회는 2001년 의사들의 정치세력화를 표방하며 출범한 단체다.
의사협회는 또 열린우리당 B의원이 제출한 ‘의심처방 의사응대 의무화법안’을 저지하기 위해 금강산 행사에 참가한 한나라당 의원 보좌관 9명에게 거마비와 향응 등을 제공했다.
이 발언록과 음성파일은 지난달 31일 강원도의사회 정기총회에 참석한 장 회장이 지역 대의원들에게 의사협회의 정치권 로비가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지에 대한 설명 내용을 담고 있다. 장 회장의 불법 로비 발언은 의사협회가 강력 반대해온 정부 의료법 개정안의 국회 제출을 앞둔 시점에 나온 것이어서 파장이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본보 취재팀이 발언록을 정밀 분석한 결과, 의정회는 의사협회 회원 40% 가량이 자율적으로 납부한 회비로 운영되고 있다. 한해 기금은 약 7억원이며, 이 중 4억~5억원 가량을 의사협회의 정치적 영향력 행사를 위해 사용하고 있다.
장 회장은 강원도의사회 총회에서 “(로비를 통해) 법안소위 한나라당 의원 3명을 우리 편으로 만들었으며 4명만 잡으면 의료법도 법안소위에서 폐기할 수 있다”며 국회 로비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실제 장 회장은 기자와 만나 “매년 조성한 4억~5억원 중 약 80%를 공식적인 정치 후원금으로 지출하고 나머지는 국회의원들의 지역구 행사와 접대비, 의원 사무실 소속 인턴 사원 급여 지원 등에 비공식적으로 사용한다”고 로비 의혹을 시인했다.
그는 또 “의사협회와 관련된 법안이 워낙 많다 보니 평소 정치권과 끈끈한 우호 관계를 만들 필요가 있다”며 “우리의 건전한 의견을 반영하기위해 환경노동위원회와 재정경제위원회 소속 의원 사무실에서도 요청이 오면 어쩔 수 없이 지원해 왔다”고 토로했다.
한편 장 회장이 현금 1,000만원을 줬다고 지목한 한나라당 A의원 측은 “현실적으로 그런 일도 없고 있을 수도 없다”면서 “지난 연말에 의협, 한의사협회, 치과의사협회 등의 후원금 수백 만원을 받은 적은 있지만 합법적인 돈이어서 전혀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정민승기자 ms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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