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크라이튼의 소설을 영화로 만든 <쥬라기 공원>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1993)을 매력적으로 만든 것은 과학적인 사실들이 이야기의 진행과 잘 맞아 떨어진다는 점 때문이었을 것이다. 속편을 거듭하면서 그런 매력이 떨어지는 느낌이 있지만, 내년에 4편이 개봉된다니 다시 기대를 걸어 볼 일이다. 쥬라기>
이 영화에서 특히 흥미로웠던 것은 멸종된 공룡의 DNA를 얻어 다시 복원한다는 설정이다. 복원된 공룡들로 코스타리카 서해안에 있는 섬에 테마파크를 세우려는 사업가 존 해몬드. 그는 티라노사우르스, 트리케라톱스, 딜로포사우르스, 브론토사우르스, 벨로시렙터와 같은 쥬라기와 백악기의 공룡들과 식물들을 재현해 냈다.
영화 속의 공룡들은 빠르고 강할 뿐만 아니라 영리하다. 이쯤에서 생기는 의문이 하나 있다.
트라이아스기부터 쥬라기, 그리고 백악기를 거쳐 오랜 세월 동안 지구를 지배했던 강하고 영리한 공룡들이 우주선을 타고 이사를 떠난 듯이 깨끗하게 사라진 이유는 무엇일까?
유력한 학설은 운석 충돌설이다. 중생대와 신생대의 경계에 해당하는 지층에서 암석을 채취하여 화학적 성질을 조사해 보면 이리듐이 아주 많이 발견된다. 이리듐은 지구상에서는 대단히 희박한 원소인데 공룡이 멸종한 중생대와 신생대의 경계에는 다른 지층에 비해서 적게는 20배, 많게는 160배 가량 많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탈리아, 덴마크, 뉴질랜드 등 꽤 멀리 떨어진 지역에서도 이 사실은 한결 같았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리듐은 지각의 암석에는 매우 드물지만 외계에서 떨어지는 운석에는 상당량이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거대한 운석이 지구에 충돌해서 운석에서 나온 먼지가 대기 상층에 머물다가 지상에 쌓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지구 곳곳의 중생대와 신생대의 경계에 해당하는 지층들에서 표본을 얻어 그 표본에 포함된 이리듐의 평균값을 구하고 지구 표면 전체를 덮었다고 가정하면 이리듐의 총량을 구할 수 있다. 일반 운석에 포함된 이리듐의 함량비를 알고 있으므로 이 만큼의 이리듐을 지층에 남기기 위해서 운석의 크기가 얼마나 돼야 하는지를 계산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계산에 따르면 운석의 직경은 10㎞가 넘는다.
이와 같이 거대한 운석이 떨어지면 충돌로 인한 먼지가 온 하늘을 두껍게 뒤덮고 상당 기간 태양 광선을 차단한다. 따라서 광합성 식물들이 살아 남기 어렵고 식물들이 사라지면 초식동물, 육식동물로 이어지는 사슬에 있는 생물들이 모두 생존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실제로 멕시코 유카탄 반도 해안가에서 직경이 200㎞에 달하는 운석공(크레이터)이 발견되어 지름 10㎞ 가량의 거대한 운석이 지구에 충돌했던 사실이 있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중생대에서 신생대로 넘어오면서 지구상에서 사라진 동물은 공룡만이 아니다. 이들 외에도 두족류에 속하는 암모나이트와 벨렘나이트, 이매패류인 이노세라무스, 부유성 유공충 등 여러 종이 사라졌다. 화석 자료가 부족하여 멸종된 정확한 시기를 판단하기 어렵지만, 익룡이나 시조새와 같은 날짐승도 신생대 지층에서는 발견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백악기 말의 대량멸종 사건은 육·해·공에서 함께 일어났다고 할 수도 있다.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중생대 후기에 사라진 동물들의 과(科)는 100개가 넘는다. 과는 종(種)보다 더 큰 단위이니 사라진 종은 그 보다 훨씬 많다.
물론, 운석 충돌로 지구상의 모든 대규모 멸종을 설명할 수는 없다. 예를 들어 고생대에서 중생대로 넘어오는 페름기 말에는 공룡이 사라졌던 백악기 말보다 두 배나 큰 규모의 멸종이 있었다.
그리고 페름기의 사건이 백악기와 다른 점은 멸종된 대부분의 동물들이 바다에 살았다는 점이다. 무엇보다도 페름기의 지층에서 이리듐의 농축 현상이 발견되지 않는다. 따라서 이 멸종은 운석 충돌이 아니라 다른 원인 때문일 것이다.
이것과 관련해서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는 가설은 해수면이 낮아지면서 해양 생물들의 최대 서식처인 대륙붕이 좁아져 생태계가 파괴되고 멸종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이 밖에도 멸종을 설명하는 몇 가지 가설들이 더 있다. 그리고 어떤 학자들은 대량 멸종이 단일한 현상이 아니고 우연히 함께 일어난 여러 환경 변화의 조합의 결과라고 이야기한다.
화산 폭발, 기온 저하, 해수면의 변동, 운석 충돌 같은 것들이 우연히 동시에 일어나서 생긴 일이라는 것이다. 원인이 무엇이 되었건, 지금까지 연구 결과에서 드러난 것은 멸종과 급격한 환경 변화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생명은 급격한 환경 변화에 상당히 취약하다.
멸종에 대한 연구는 헤아리기도 어려울 정도로 먼 옛날의 사건을 재구성 해보는 덧없는 지적 유희가 아니다. 인간의 미래를 걱정하는 많은 사람들에겐 오늘의 문제이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협의체(IPCC)는 이달 초에 441명의 과학자들이 작성한 1,572페이지의 연구 결과를 23페이지로 요약해서 공개했다. 이 발표에 따르면 지구온난화로 2020년대 지구 평균기온이 1도 오르면 4억~17억 명이 물부족에 시달리고, 생태계에 대혼란이 일어난다.
2050년대에 1.5~2.5도 상승하면 지구 생물의 30%가 멸종 위기에 처한다. 그리고 2080년대에 3도 이상 오르면 지구 해안가의 30% 이상은 바다로 변하고, 지구 생물종이 대부분 멸종한다. 지옥의 묵시록 같은 참담한 시나리오다.
물론, 이번 발표는 가상의 시나리오이고 이런 재앙을 막기 위한 인간들 스스로의 노력이 서서히 시작되고 있으므로 현실화되지 않을 것이라 믿고 싶다. 하지만, 여전히 이런 시나리오를 과장이라고 일축하면서 눈앞의 작은 이익에 매달리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은 개탄스럽다. 그들에게 인류가 지구 위에서 사라져 버리고 난 이후에 살아남아 진화한 어떤 종이 만든 ‘홀로세 공원’에 갇혀 눈요깃감으로 전락한 인간의 모습을 상상해 보라고 권하고 싶다.
■ 미래를 걱정하지 않는 사람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협의체(IPCC)의 최근 보고서는 조금 잘못되었으면 무산될 뻔했다. 몇 나라의 정치인들이 기후변화의 영향에 대한 과학자들의 강력한 경고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대치상황이 발생했다고 한다.
미국과 중국을 비롯해 러시아, 사우디아라비아의 정치인들은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초래될 물 부족과 농작물 생산량 감소, 멸종위기 생물종 비율 등을 문제 삼고 과학적 예측의 신뢰도가 90% 이상이라는 과학자들의 경고 수위를 낮춰줄 것 등을 요구했다.
거론된 나라의 정치인들이 왜 반대를 했는지는 뻔하다. 미국과 중국, 러시아는 세계 최대 온실가스 배출국이며, 세계 1위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는 미국과 함께 의무적인 온실가스 감축에 반대해온 대표 국가로 손꼽힌다.
인류의 미래와 같은 대의보다는 자국의 경제적 이익 때문이라는 것은 너무나도 분명하다. 물론 겉으로는 이들도 '과학'을 내세우고 있다. 미국 대통령 조지 부시가 2001년 교토협약을 탈퇴하면서 내건 이유는 지구 온난화와 관련된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조지 부시가 비요른 롬보르의 <회의적 환경주의자> 를 어깨 너머로 읽었던 것이 아닐까. 회의적>
이 책의 논지는 환경이 악화하고 있다는 주장은 완전 허구라는 것이다. 롬보르에 따르면 환경은 점점 더 좋아지고 있거나, 나빠졌더라도 무시할 만한 정도다. 그런데도 생태 근본주의자들이 환경괴담을 계속 유포하고 미디어는 이를 확대 재생산한다. 환경문제가 있더라도 개선효과보다 비용이 더 크다면 환경 정책을 시행할 필요가 없다. 롬보르는 환경과 관련된 비용과 이익을 계산해서 이익이 더 큰 쪽으로 행동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롬보르가 모르고 있는 것은 환경과 관련된 비용과 이익을 숫자로 만들어 계산하려는 모든 시도들은 완전 허구라는 것이다. 인류 멸종이 끼치는 경제적 손해를 계산하면 얼마일까.
과학평론가ㆍ문지문화원 <사이> 기획실장 주일우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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