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은 근대를 어떻게 기억해낼까. 상실과 감상으로 받아 적는 악극도 있지만 근대는 주로 역사의 황혼과 여명 사이에서 비장과 치열로 개인을 온전히 내던진 비극적 공간으로 다뤄져 왔다.
그러나 지금 공연 중인 연극 <다리퐁 모단걸> (이해제 작ㆍ연출)은 근대로 이행하는 시간, 1902년을 풍속희극과 로맨스를 섞어 일상과 사적 공간 속에서 추억한다. 오영진의 <동천홍> 이나 오태석의 <도라지> 가 그린 근대적 시공간이 품은 잉걸불을 아로마 촛불 아래의 로맨틱한 시간대로 옮겨 놓았다. 도라지> 동천홍> 다리퐁>
주인공은 베틀 대신 전화 교환대를 끌어안은, 개화기를 사는 명랑 처녀 ‘김외출’이다. 그러니까 제목 중 ‘다리퐁’은 ‘텔레폰’을 음차한 것으로, ‘사람 사이를 잇는 다리’인 교환수의 속성을 포개놓은 것이다. (외출이가 전화선 너머 짝사랑하는 상대가 군악대 부장인지라 임오군란 이후 끼어 드는 역사적 시간의 틈입을 아주 피해가지는 않는다.)
전화 너머 군주의 ‘옥음’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노신하의 삽화를 통해 근대의 도래를 미처 예감하지 못하는 구세대의 페이소스를 끼워놓지만, 지나친 희화 때문인지 실소에 묻혀 쓸려가 버린다.
그리고 외출의 가계를 통해 씨받이 어미나 서자, 서녀 등 봉건적 가족제도의 갈등과 모순이 등장하지만 ‘다리퐁’의 풍속사를 재현하기 위한 가벼운 징검돌로 쓰이는 정도다.
마지막 장면에서 작가는 하고 싶은 말을 눙친다. 전신주를 껴안고 실연의 눈물을 삼키는 여주인공 앞을 지나는 두 인물은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 의 대한제국 판 럭키와 포조처럼 보인다. 실연의 아픔으로 전신주에 기대 우는 여주인공에게 포조 격 맹인 상전이 럭키 격인 하인에게 말한다. 고도를>
“천천히 걸어.” 쇼를 하라고 선동하는 우리 시대 ‘다리퐁’의 문명의 이기의 전파 속도 앞에서 삶과 사랑의 속도를 돌아보기를 권하는 중의법적 전언인 듯하다.
연극은 근대의 풍속사를 순발력 있게 조합하고, 우리 시대의 ‘다리퐁’ 강박증을 근대 공간을 빌어 풍자하기도 하며, 동영상 전화까지 진화한 ‘다리퐁’의 역사 안쪽에 이렇게 사람살이의 온기가 있었노라고 노스탤지어를 자극하기도 한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대부분의 삽화들이 풍속의 캐리커처 수위에 머물러 있고, 순정만화 틀에 안주한 등장인물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흉가에 볕들어라> , <꼭두별초> 등에서 만개한 시적 수사와 서정성으로 요약될만한 이해제 식의 말법이 근대적 풍경의 만물상격 정보 열거에 치인 점도 아쉽다. 6월 3일까지, 동숭아트센터 소극장. 꼭두별초> 흉가에>
극작ㆍ평론가 장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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