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기획 한호혁 대리는 요즘 꿈에 부풀어 있다. “3년 전 돌아가신 선친이 고등학교시절부터 임종 직전까지 쓰신 일기를 자서전으로 정리할 겁니다.
젊은 세대가 미쳐 깨닫지 못한 아버지 세대의 지혜와 경륜이 몸 속 깊이 배이겠죠.” 계획은 남다른데 도대체 1년 365일 다람쥐 쳇바퀴 도는 직장생활 중 언제 짬을 낸다는 말일까. 답이 의외다. “9월 한달 동안 방학을 낼 거에요.”
직장인에게 방학은 아련한 유년의 향수요, 이루지 못할 꿈이다. 여름한철 1주일 휴가를 내 “열심히 일한 그대, 떠나라”라고 호기롭게 외쳐보지만 스케줄잡기, 교통체증 등 출발부터 진이 빠져 차라리 일터가 낫다는 푸념만 나는 게 다반사다.
그런데 한 달짜리 방학이라니. 한대리의 포부는 회사가 ‘아이디어 방학’을 도입하면서 가능해졌다.
기업들이 ‘휴테크’(休 Tech) 경영에 눈을 뜨고 있다. 휴테크는 한마디로 “푹 쉬어야 제대로 일한다”는 경영철학. 휴식과 여가시간을 활용해 창의력을 키우고 자기계발을 함으로써 경쟁력을 높이자는 취지다.
주5일 근무제의 확산에 따라 휴테크 경영의 중요성도 커지고 있는데 길게는 한달 이상의 방학이나 장기휴가, 짧게는 주말휴가 등 다양하다.
제일기획은 장기집중 휴가제인 ‘아이디어 방학’제를 이 달부터 도입한다고 22일 밝혔다.
아이디어 방학은 오지 탐험, 이색 체험, 단기 연수, 세대 연구 등 각자 테마를 자유롭게 선정해 자신의 휴가일수에 맞춰 2~4주, 장기근속자는 최대 2개월까지 긴 방학을 즐길 수 있다. 현재 제일기획 임직원의 50%정도가 신청했다.
아이디어가 중요한 광고회사답게 독창적이고 재미난 아이템이 가득하다. 먼 나라 이(異)문화 탐방, 선진회사 탐방, 자서전 집필, 해외 연수 등이다.
물론 그냥 놀아선 안된다. 이 회사 박용국 수석은 “징기스칸의 진취적 기상을 체험하기 위해 보름 정도의 일정으로 몽고 기행을 떠날 예정”이라고 했다.
대우조선해양은 국내 최초로 올해부터 ‘집중 휴가제’를 실시한다. 법정 공휴일인 제헌절 광복절 등엔 일하는 대신 여름휴가와 추석휴가를 각각 16일과 9일씩 갖기로 노사(勞使)가 합의한 것.
회사 입장에선 업무 효율이 떨어지는 한여름과 추석 연휴의 생산 감소를 줄일 수 있고, 직원들은 넉넉한 휴식을 즐길 수 있게 됐다.
삼성물산 역시 휴가기간 동안 아이디어 구상 및 개발활동을 지원하는 ‘아이디어 버케이션’(Idea Vacation) 제도를 도입했다. 짧지만 굵은 휴테크도 있다.
패밀리레스토랑 베니건스는 올 초부터 ‘펀 펀(Fun Fun) 테마가 있는 주말여행’을 열어 2박3일 동안 4인1조의 한 팀이 해외 먹거리 문화체험을 할 수 있다.
생활가전업체 웅진쿠첸은 올 초부터 ‘휴(休)데이’를 정해 한 달에 한번 댄스 영화 노래 수영 등 테마에 따라 일 대신 휴식시간을 갖는다.
최석호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교수(레저경영)는 “절대 노동시간이 생산력의 원천이던 시절과 고임금으로 충성도를 높이던 평생직장의 개념은 사라졌다”며 “기업들이 일과 삶의 조화 프로그램, 즉 휴테크을 앞 다퉈 도입하는 것은 휴식 뒤에 샘솟는 (직원들의) 창조력이야말로 기업의 경쟁력이라고 깨달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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