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려면 무엇 하러 공개를 한 것인지 모르겠다."
2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특위 소속 한 의원은 정부가 한미 FTA 협정문을 공개하면서 범위와 방식을 일방적으로 결정한 데 대한 노골적 반감을 드러냈다.
실제로 영문 협정문 초안이 공개된 과정을 살펴보면 정부의 태도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우선 미국은 협상 타결 직후부터 의회와 민간 전문가 700여명이 협정문 초안을 꼼꼼히 검토하고 있는 데 반해 우리는 정부 협상팀 내에서만 협정문이 회람되고 있다.
국회의 수 차례 요구 끝에 한덕수 총리가 10일 대정부질문 답변에서 이번 주 특위 위원들에게 협정문을 공개하겠다고 했지만, 금요일인 이날 오후 늦게 약속이 지켜졌다.
더욱이 정부는 관세 양허안과 서비스ㆍ투자 유보안, 품목별 원산지 기준 등 논란의 중심에 있는 사안은 공개하지 않겠다. 공개 방식도 컴퓨터 화면으로 한정했고, 의원들이 협정문 내용을 메모할 경우 그 내용이 외부로 알려져도 되는지를 정부측 참관인들이 판단하겠다고 했다.
이쯤 되면 협정문 공개 취지와 목적이 어디에 있는지 헷갈릴 수밖에 없다. 행정부 감시라는 입법부의 기본 기능이 이번 공개과정에선 거의 작동하지 못하는 까닭이다. 그야말로 공개를 위한 공개인 셈이다.
물론 상황이 이 지경에 이른 데는 국회에도 책임이 있다. 협상 내용을 검증하는 최소한의 시스템이랄 수 있는 통상절차법조차 제정하지 않았고, 특위 위원장과 간사단도 공개 범위와 방식에 대한 정부의 사전 통보를 여과 없이 수용할 만큼 별다른 문제의식이 없었다. 앞으로 정부와 국회가 이런 시스템을 갖고 EU 중국 인도 등과 FTA 협상판을 벌리겠다니 걱정스러울 따름이다.
양정대 정치부 기자 torc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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