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영국과의 독립전쟁에서 승리한 직후인 1786년 과도한 세금과 빚에 쪼들린 매사추세츠 농민들이 '다니엘 셰이'를 중심으로 폭동을 일으켰지만 대응은 속수무책이었다. 강력한 실권을 가진 주정부가 느슨한 국가연합(Confederation)을 이루고 있어, 연방군 같은 중앙정부가 존재하지 않았던 탓이다.
이 사건은 중앙집권적 연방제 논의에 불을 붙였고, 결국 제헌의회를 거쳐 1788년 연방제로 전환하게 된다. 개인의 자유와 자결권을 내세우며 저항하던 반 연방주의자들은 국민의 저항권과 총기소유의 자유를 인정하는 '수정헌법 2조'를 반대급부로 얻어낸다.
▦ 이렇게 깊은 뿌리를 가진 미국의 총기소유 자유가 버지니아공대 총기난사 사건으로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혹시라도 한국인에 대한 인종적 편견으로 비화할까 노심초사하는 국내 여론과 달리, 미 언론은 허술한 총기규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렇다고 이 비극적 참사가 매년 3만 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가는 총기에 대한 규제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과거에도 교내 총기사고 때마다 규제여론이 들끓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미국에서 가장 강력한 로비단체로 유명한 전미총기협회(NRA)의 막강한 영향력과 무관치 않다.
▦ 130년이 넘는 역사에 400만 명의 회원을 가졌다는 이 단체는 강력한 결속력과 풍부한 자금력을 무기로 미국 정계를 마음대로 주무른다. 이들은 2000년 대통령선거에서 총기규제를 주장하는 민주당의 앨 고어 후보가 우세를 보이자, 선거 직전 대대적인 낙선운동에 나섰다.
영화배우 출신의 당시 회장 찰턴 헤스턴은 "내 시체의 손에서 총을 빼앗을 때나 총기를 포기할 것"이라고 외쳤다. 이들의 기세가 워낙 맹렬해, 고어는 총기 규제에 대한 입장을 완화해야 할 정도였다. 다른 정치인들은 총기 문제를 입에 올리는 일조차 기피한다.
▦ NRA의 영향력은 국내뿐 아니다. 미국 다음으로 총기 사고가 많은 브라질 정부는 2005년 총기규제에 대한 국민투표를 실시했지만 부결됐다. 한달 전 실시한 여론조사만 해도 73%가 찬성하던 이 법안이 부결된 이면에는 NRA의 지원이 있었다는 분석이다.
세계 총기 생산의 절반을 차지하는 미국 입장에서는 국내 뿐 아니라 외국에서의 총기 규제 운동도 막아야 하며, NRA가 그 전위대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너무나 안타까운 이번 사고 희생자들에게 삼가 조의를 표하며, 그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고 보다 안전한 미국의 밑거름이 되길 바란다.
배정근 논설위원 jkp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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