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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참극/ 소포 내용으로 본 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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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참극/ 소포 내용으로 본 심리

입력
2007.04.19 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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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공대 총기난사 사건의 범인인 조승희씨가 범행 도중 미 NBC 방송에 보낸 소포의 내용이 공개되면서 그의 범행동기와 심리상태 등을 밝혀줄 새로운 단서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조씨의 범행동기와 관련해선 당초 여자친구와의 다툼이나 실연, 치정에 따른 충동적 범행쪽에 무게가 실리기도 했다. 그러나 소포에 포함된 비디오나 사진, 일종의 ‘선언문’등의 내용을 보면 그의 불특정 다수에 대한 총격은 상당한 시간을 두고 계획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것이 훨씬 설득력을 갖게 됐다.

또 조씨는 부자들에 대한 증오심 등 심리적으로 엄청난 압박 요인을 갖고 있는 상태에서 그러한 범행이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식으로 스스로를 몰아가고 있었다는 점도 보다 구체적으로 확인되고 있다.

여자문제 등 우발적 범행은 아닌 듯

조씨가 무차별 총기난사를 벌이는 과정에서 방송사에 보낼 사진과 비디오물을 찍고 섬뜩한 내용이 담긴 글을 써두었다는 사실 자체가 범행의 계획성을 높여주는 대목이다. 물론 조씨가 스스로에 대한 비디오물을 촬영한 시점 등은 아직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행동 자체가 우발적이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가 만든 비디오물이나 사진, 써둔 글의 내용을 보면 자신의 행동에 대해 정당성을 부여하면서 범행의 과정이나 결과를 구체적인 단계까지 구상해 두었음을 짐작케 한다.

이는 총기난사가 그의 머리 속에서는 이미 여러 번 상상으로 되풀이됐다는 뜻이고, 그 상상을 실제 행동으로 옮김으로써 비디오물 등은 결국 실제 상황에서 활용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가 1999년 컬럼바인 고교 총기사건의 범인인 에릭과 딜란을 순교자로 언급한 부분도 그의 행동이 우발적이라기 보다는 나름대로는 논리적으로 인과관계가 있는 것이었음을 보여준다. 조씨의 범행이 컬럼바인 고교 총기사건을 모델로 한 ‘모방 범죄’에 불과한지 여부는 말하기 어렵지만 조씨가 그 사건의 영향을 받은 것 만큼은 분명하다.

비디오물이나 사진 등에 등장하는 조씨의 모습에서 연쇄 편지폭탄테러 사건의 범인인 이른바‘유나바머(Unabomer)’나 한국영화 ‘올드보이’의 주인공이 연상된다는 점도 그냥 지나치기 어려운 대목이다.

다만 총기난사에 대한 조씨의 계획 정도가 처음부터 끝까지 완결성을 갖는 것인지는 불분명하다. 언젠가 실행에 옮겨질 수도 있는 행동을 상상하고 총기구입 등의 준비를 했다고 해도 구체적으로 범행을 촉발시킬 계기가 없었다면 범행은 현실화하지 않았을 수도 있는 것이다.

현재로서는 조씨가 NBC 방송에 보낸 소포의 내용물을 통해서 보더라도 엄청난 참사로 이어진 분노의 폭발이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일어난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

인종문제 탓이라 볼 단서도 없어

조씨가 통제하기 어려운 피해의식 속에서 스스로를 범죄행위로 내몰아가는 억압된 심리상태에 있었음은 NBC 방송에 보낸 소포의 내용물로부터 여실히 드러난다. 조씨는 자신이 만든 비디오물에서 “나를 궁지로 몰아 넣었고 이 선택밖에 할 수 없게 만들었다”며 세상에 대한 절절한 원망을 적나라하게 풀어놓고 있다.

세상에 대한 적개심이 구체적으로 어디서 비롯되는 지에 대해선 전모가 드러나 있지 않고 조씨가 부자들에 대한 증오심을 갖고 있다는 점만은 분명하게 확인된다.

1992년 부모와 함께 이민을 와서 풍족하지 못한 생활을 한 것이 조씨의 정신상태에 영향을 미쳤음을 부인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드러난 것에서는 조씨가 이민 1.5세대로서 느끼는 소외감이나 인종적 차이에 따른 갈등, 소수계로서 느끼는 자괴감 같은 것을 직접적으로 표출한 것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런 점에서는 통계적으로 총기 대량살상의 범인들이 백인으로 미국내 주류사회 출신인 경우가 많았다는 점은 음미해볼만한 대목이다. 조씨의 비정상 정신상태가 이민 생활에서 비롯된 측면도 있겠지만 미국적 고민과 갈등 때문에 형성된 것일 수도 있다고 볼 수도 있는 것이다.

조씨는 비디오물에서 “오랫동안 약하고 힘없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예수처럼 죽는다”고 말함으로써 등 기독교 종교와 관련된 번민과 갈등도 있었음을 암시했다.

워싱턴=고태성 특파원 tsg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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