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미국인이야."
최근 가볍게 읽은 책에 이런 구절이 나왔다. 중학교 3학년 때 미국으로 유학간 여학생이 예일 대학에 합격한 뒤 자신을 미국인으로 소개한다는 내용이었다. 힘들게 공부해 명문 대학에 들어갔으니 미국인으로 당당히 살고 싶었으리라.
그러나 한미자유무역협정(FTA)이 어렵게 마무리된 뒤라서 그런지, 여학생의 말이 예사롭지 않게 들렸다. 그것은 한미FTA로 우리 사회가 미국식 자본주의에 본격적으로 편입되고, 미국식 가치에 압도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 여학생처럼, 스스로 그 국민이 되고 싶을 정도로 미국은 매력적인 나라일까. 그럴 수 있을 것이다. 한 사람을 좋아할 수도, 싫어할 수도 있듯 한 나라를 좋아할 수도, 싫어할 수도 있다면 미국을 좋아하는 것 역시 한편으로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다만 미국에 대한 우리의 태도가 얼마나 종합적이고 깊이 있느냐는 따져볼 필요가 있다. 겉만 보고 미국을 평가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오래 전 회사 일로 미국에 다녀온 친구가 침을 튀기며 미국 이야기를 한 기억이 난다. 미국을 좋아하지 않던 녀석이었는데 미국 예찬론자가 돼 나타난 것이다. 그가 본 미국은 풍요로웠다. 우리는 좁은 땅에서 악다구니 하듯 사는데 저들은 넓은 땅에서 온갖 여유를 부리며 살고 있었다.
부러웠을 것이다. 그곳에서 살고 싶은 마음도 살짝 들었을 것이다. 나 역시 미국을 가보고 싶었는데, 그때는 친구가 미워서 이렇게 쏘아주었다. "너는 출장 가서 회사 돈을 쓰고 돌아왔다. 돈을 쓰기만 한다면야 어딘들 좋지 않으랴. 만약 네가 그곳에서 돈을 번다면, 미국을 그렇게 좋게만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지금 우리 사회에서 미국을 찬양하고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이 친구와 같다고 생각한다. 낯선 문화와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고생은 했겠지만(미국에 있어도 그곳 문화가 전혀 낯설지 않고, 경제적 어려움이 전혀 없는 사람도 있지만), 미국서 살다 온 사람 대부분은 그곳에서 본격적으로 돈을 벌지 않았다. 금액의 차이는 있겠으나 한국 돈을 갖고 가서 쓴 사람들이다. 유학생이 그렇고 안식년을 보내는 교수가 그렇고 공무원이 그렇다.
내가 돈벌이에 의미를 두는 것은, 그것이 몸을 부대끼며 한 사회의 작동원리를 이해하고 모순을 체득하는 과정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을 거쳐야 비로소 그 사회를 총체적으로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1년을 살든, 10년을 살든 제 나라에서 돈을 가져 다 쓰기만 한다면 미국의 속살을 제대로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미국은 부러운 나라로 비쳐질 게 틀림없다. 걱정스러운 것은, 그런 사람들이 한국에 돌아와 학생을 가르치고 정책을 입안하는 등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사실이다.
미국에서 돈을 벌지 않았으니 대미외교도 하지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미국에 대한 자신의 지식과 경험이 불완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그만큼 조심하라는 뜻이다.
마침 미국인 스콧 버거슨은 <대한민국 사용후기> 라는 책에서 한국이 작은 미국이 되려고 용을 쓴다거나 <섹스 앤 더 시티> 와 스타벅스를 숭배한다고 꼬집었다. 한미FTA를 계기로 미국 바람이 거세게 불게 틀림없는데, 그런 조롱을 받지 않으려면 미국을 제대로 알아야 할 것이다. 섹스> 대한민국>
박광희ㆍ문화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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