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 1학년 아들을 둔 직장 여성 A(37)씨는 ‘학부모 급식당번’만 생각하면 머리가 지끈거린다. A씨는 그 동안 학부모들이 강제적인 급식당번제에 반발, 2005년부터 ‘순수자원봉사제’로 바뀐 줄만 알았다.
그러나 최근 ‘급식당번’통보를 받고는 ‘현실’을 깨달았다. 직장 일 때문에 ‘곤란하다’는 말에 담임 교사는 “학교 앞 문방구에서 대신 일 할 사람을 구할 수 있다”며 ‘급식도우미’를 소개했다. A씨는 자원봉사라고 해놓고 왜 급식도우미를 소개하는지 의아했지만, 묻지도 못한 채 문방구에서 시간당 1만8,000원을 주고 도우미를 구했다. 그는 “그냥 빠지면 담임이나 다른 엄마들한테 싫은 소리를 들을 것 같아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다.
학부모들이 급식당번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교육 당국은 2005년 급식당번제를 폐지하라고 지시했지만 대부분의 학교는 아직도 학부모를 급식에 동원하고 있다.말로만 자율일 뿐 강제나 다름없다.
이 때문에 일하는 엄마들은 돈을 주고서라도 대신 급식을 해줄 사람을 구할 수밖에 없다. 직장인 B(35ㆍ여)씨는 “학급 당 학생 수가 30명도 안되다 보니 당번이 한 달에 2번 꼴로 돌아온다”며 “월차도 한 두 번이지 매번 나갈 수 없어 도우미를 찾는다”고 말했다.
서울 시내 초등학교 앞 문방구는 도우미 알선 역할도 한다. 관악구 봉천동 C초교 앞 문방구 주인은 “도우미를 찾는 엄마들이 1주일에 5명 정도 연락해 온다”며 “엄마와 나이대가 비슷한 근처의 주부를 연결해 준다”고 말했다. 가격은 보통 시간 당 1만5,000원~2만원대다.
일부 문방구 주인은 3,000원 안팎의 소개비도 받는다. 마포의 한 문방구 주인은 “사람 찾고 연락해 주고 하는데 당연하다”며 “엄마들도 문제 삼지 않는다”고 말했다.
엄마들의 급식 도우미 수요가 늘어나자 가사도우미(파출부)를 소개하던 사설 인력업체에서도 하루 3시간 2만5,000원짜리 급식도우미 일자리를 만들었다.
급식당번은 혼자서는 밥을 제대로 챙겨 먹지 못하는 초교 1, 2학년 교실에서 필요하다. 1, 2학년은 오후 수업이 없는데도 급식으로 점심을 먹고 있다. 학부모들이 급식을 원하기 때문이다.
서울 D초교 교장은 “1, 2학년의 경우 전업 주부들 사이에서도 도우미를 쓰는 경우가 늘고 있다”며“1, 2학년 급식만 없어도 급식당번에 따른 학부모와 교사, 또는 학부모간 미묘한 갈등이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학교와 교육 당국은 서로 남의 탓만 하고 있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학부모 급식당번제를 폐지하라는 공식 입장을 전달한 만큼 나머지는 학교가 알아서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서울 E초교 교사는“5, 6학년 학생들을 급식도우미로 이용할 수 있지만 점심 시간에 뛰어 놀고 싶어하는 고학년 아이들에게 이를 강요할 수는 없다”며 “자원봉사자는 구하기 어렵고 교사들도 점심은 먹어야 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박상준 기자 buttonpr@hk.co.kr신보경ㆍ이경진 인턴기자(이화여대 언론정보학과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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