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개헌안 발의를 최종 단념했다. 국민과 정치권이 개헌 논란에 휩쓸리지 않게 됐다는 점에서 환영할 만하다. 또한 개헌안 발의 철회에 이르기까지 모처럼 정치권이 보여준 물밑 대화와 사전 조율 노력을 무엇보다 높이 평가하고 싶다.
국민은 원칙에 어긋난 야합을 미워할지언정 정치권의 본령인 타협과 절충 자체를 혐오하지 않는다는 상식이 통한 결과다. 우리는 청와대와 한나라당의 중개 역할을 자임한 열린우리당이나 상대방 체면 살리기에 동의한 한나라당의 노력을 평가하며 이런 현실 감각이 우리 정치의 새로운 행동기준으로 자리잡기를 바란다.
사실 노 대통령이 개헌안을 발의한다고 해도 크게 달라질 것은 없었다. 한나라당을 비롯한 모든 야당이 반대하고, 준여당인 열린우리당마저 심드렁한 마당에 억지로 개헌안을 발의해 국회 논의에 맡겨보았자, 제대로 심의되지도 못한 채 '4년 연임제 개헌'의 불씨만 꺼뜨렸을 뻔했다. 그런데 개헌 논의 불씨를 살려 놓았으니, 챙길 것은 다 챙긴 셈이다.
다만 노 대통령의 개헌 제의 당시부터 느껴야 했던 안타까움과 불만은 쉬이 삭지 않는다. 뻔한 결과를 눈 앞에 두고도 일을 이렇게까지 몰고 온 옹고집이 질린다.
그래도 그렇게 버틴 덕분에 한나라당의 개헌 약속을 얻어냈다고 자위할지 모르지만, 그것이 정치적 약속에 그칠 뿐이라는 점에서 실질적 의미는 거의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더욱이 다수 국민의 분명한 반대의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국민투표법 위반 논란까지 불러가며, 국무총리가 앞장선 정부가 개헌 홍보에 쏟아 부은 시간과 비용은 낭비 이외의 다른 말로는 표현할 길이 없다. 국민의 입안 한 쪽에 여전히 쓴맛이 남아 있는 것도 그런 생각 때문이다.
비록 임기말이라지만 대통령과 정부가 할 일은 많다. 정국이 본격적 대선 국면에 접어 들어 합리적 관리의 필요성이 크다. 한미 FTA나 북한 핵 문제, 교육ㆍ부동산 문제 등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은 과제다. 이번 개헌안 발의 단념을 그런 당면 과제를 자각하는 계기로 삼을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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