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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커뮤니케이션즈 이인석·박주명씨/ '스펙 꽝'이었지만 '꽉찬 블로그'로 대기업 뚫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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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커뮤니케이션즈 이인석·박주명씨/ '스펙 꽝'이었지만 '꽉찬 블로그'로 대기업 뚫었죠

입력
2007.04.15 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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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 취업자들이 흔히 취업에 필요한 외적 조건의 총체라고 말하는 ‘취업 스펙’부터 살펴보자.

A씨: 대학 중퇴→전문대 야간→광운대 컴퓨터공학과 편입+학점 평균 3.5점(4.5점 만점)+토익 점수 590점

B씨: 경희대 산업공학과 졸업+관련 자격증 전무+학점 평균 3.2점(4.3점 만점)+토익 점수 없음

A씨와 B씨가 취업에 성공할 확률은 얼마나 될까. 화려한 스펙으로 중무장하고도 취업 전선에서 완패하는 구직 전사가 대다수인 터라 전문가들 조차 답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당신을 실업자로 임명합니다.”

그런데 아니다. 둘은 보란 듯 취업했다. 그것도 미니홈피 2,000만개를 거느린 인터넷 업체의 선두주자 SK커뮤니케이션즈에 당당히 합격했다. 그들이 말하는 비결은 간단하다. “미치도록 하고 싶은 일, 신나게 할 수 있는 것만 죽어라 했다.”

사회가 요구하는 스펙을 철두철미하게 관리하는 구직자가 들으면 가슴이 터질 노릇이다. 그리하여 상식을 뛰어넘은 그들의 취업 성공기에 우리는 주저 없이 ‘이색 취업’이란 꼬리표를 단다. 정작 본인들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이색 취업 성공자’ A씨와 B씨가 만났다.

▦진정한 실력은 아이디어와 열정이다

A씨인 박주명(29)씨. 대학졸업을 앞둔 2005년 말 그는 여느 또래처럼 삼성 LG 등 대기업 문을 두드렸다. 목표는 일반 소프트웨어 개발. 하지만 삼성은 토익 점수가 모자라 원서도 못 냈고, 두산은 적성검사에서 떨어지는 등 줄줄이 낙방했다. 그는 “스펙이 (남들보다) 많이 뒤쳐진다는 걸 실감했다”고 했다.

당시 그는 최소한 광운대 캠퍼스에서만은 유명 인사였다. 직접 개발한 ‘러브 라이브러리’(Love Library) 서비스를 교내 인트라넷에 개설했는데 대박이었다. 어느날 도서관에서 슬쩍 곁눈질한 이성이 맘에 들었다면 러브 라이브러리 서비스에 들어가 그가 앉았던 자리를 클릭해 익명으로 글을 남기고 상대로부터 답을 받는 식이다. 속앓이만 했던 도서관의 ‘스치듯 인연’을 당당한 커뮤니케이션의 장으로 끌어올린 셈이다.

그는 “‘몇일 어디에 앉았던 여학생은 누구?’ 같은 글이 학교 홈페이지에 많이 올라오는 걸 보고 퍼뜩 아이디어가 떠올랐다”고 했다. 특히 3년 동안 꾸준히 해온 유저 인터페이스(UI) 아르바이트가 큰 도움이 됐다. 덕분에 웹상에서 영어단어 받아쓰기를 하는 ‘토익 딕테이션’, 간단한 일정을 알려주는 ‘위트’ 등 서비스 7, 8개를 직접 기획하고 개발했다.

나름의 실력을 갖췄지만 취업전선에선 고전을 면치 못하던 그에게 어느날 메일이 왔다. 그를 눈여겨보던 SK커뮤니케이션즈 관계자의 러브 콜이었다.

박씨는 “제가 만든 서비스보다는 제 홈페이지(sadrove.com)에 담은 삶의 모든 과정과 뭔가 해보려는 열정이 더 높은 점수를 받은 것 같다”고 했다. 그를 면담하고 채용했던 박지영 부장은 “경력은 없지만 블로그를 살펴보니 아이디어가 많아 창의적인 인재라 여겼고 적극적으로 일하려는 자세가 돋보였다”고 귀띔했다.

현재 그는 차세대 싸이월드 서비스인 ‘C2’를 기획하고 있다. 그는 “학벌의 차이는 인정하지만 변화가 빠르고 특이한 IT 분야에선 학점이나 영어는 의미가 없다”며 “각자 개성과 열정을 살릴 수 있는 포트폴리오를 착실히 준비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우선 내가 진짜 무엇을 하고 싶은지 각자에게 물어보세요.”

▦남들보다 먼저 시작하라, 그리고 미쳐라

B 스펙의 주인공은 이인석(32)씨다. 그는 1999년부터 학교 공부는 제쳐둔 채 당시 생소했던 인터넷에 푹 빠져 있었다. 재미 삼아 시작한 인터넷의 심취하면서 평생 인터넷 관련 일을 하고 싶어졌다. 남들이 다 따는 학과 관련 자격증은 하나도 안 땄다. 대신 2002년 대학졸업 뒤 12번의 시도 끝에 조그만 벤처회사에 취직했다.

어렵게 붙은 회사는 벤처 거품이 빠지자 사람부터 해고하기 시작했다. 2003년 10월 그는 실업자가 됐다. 다행히 그 즈음 알게 돼 빠져든 블로그(Jelly.egloos.com)는 그에겐 위안이자 신천지였다. 당시엔 블로그를 하는 사람을 죄다 털어봐야 30~40명 정도였다. 이씨는 오프라인에선 실업자였지만 온라인에선 선구자였던 셈이다.

2003년 겨울 어느날 ‘블로그 어워드’를 해보자는 제안이 나왔다. 이씨는 원래 내성적이라 사람 모이는 곳엔 잘 끼지도 않는데 그 자리만큼은 꼭 가고 싶었다. 급기야 자원봉사까지 맡으면서 행사의 핵심요원으로 일했다. 시나브로 관련 분야의 인맥도 쌓여 갔다.

덕분에 그는 블로그 기획자 눈에 띄어 2004년 3월 이글루스에 입사했고, 지금은 SK커뮤니케이션즈 소속(이글루스 서비스팀)으로 일하고 있다. 그를 채용한 허진영 사업부장은 “블로그 초기 멤버인 (이씨는) 자발적으로 커뮤니티에 참가해 블로그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씨는 “그렇게 (블로그에) 慊컥獵醮?결국 일이 잘 풀렸다는 얘기를 주변에서 많이 듣는다”며 “저처럼 블로그를 통해 취업하는 사례가 늘었으면 좋겠다”고 끝맺었다.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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