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수입차 시장이 재벌 2~4세 경영인들의 각축장으로 변모하고 있다.
대기업과 중견기업의 경영 후계자들이 ‘돈 놓고 돈 먹기 사업을 한다’는 사회 일각의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수입차 딜러 사업에 뛰어드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수입차 딜러 사업을 통해 경영 수업을 이수하고, 검증 받고자 함이다. 수입차 시장은 경영ㆍ마케팅 기법이 합쳐진 ‘종합 예술’로 재벌 2~4세 경영인들에게는 경영의 ‘족집게 교재’로 평가된다.
여기에 비교적 진입 장벽도 높아 어렵지 않게 경영 성과를 올릴 수 있다. 뛰어난 경영 성과는 대내외적으로 자신의 경영 능력을 과시하는 것이어서 향후 후계자 구도에서도 유리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수입차 딜러 사업에 직ㆍ간접적으로 관계를 맺고 있는 재벌 2~4세는 15명 정도.
SK그룹의 최태원 회장은 계열사인 SK네트웍스를 통해 재규어 볼보 크라이슬러 인피니티 푸조 등 6개 브랜드 사업을 동시다발적으로 벌이고 있다. 최 회장은 직접 사업에 관여를 하고 있지 않지만 수입차 사업으로 업무 영역을 확대하는 경영 판단은 직접 내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코오롱 그룹의 이웅렬 회장은 선친에 이어 BMW 딜러인 코오롱모터스(법인명 코오롱 글로텍)를 통해 수입차 사업을 활발히 전개하고 있다. 최근 설립 20주년을 맞은 코오롱 모터스는 최고경영진의 재가에 의해 설립됐고, 이 회장이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박용곤 두산 명예회장의 장남인 박정원 두산산업개발 부회장은 혼다차를 판매하는 두산모터스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박 부회장은 두산상사 BG(비즈니스그룹) 사장을 맡던 2004년 수입차 판매업체를 ‘두산모터스’라는 법인으로 분가 시켜 대표에 올랐다.
허창수 GS그룹 회장의 사촌동생인 허용수 GS홀딩스 사업지원담당 상무는 물류회사 승산 대표이사를 지내면서 일본의 렉서스를 판매하는 센트럴모터스의 업무 보고를 받는 등 꾸준히 수입차 딜러 사업에 관여해오고 있다.
조석래 효성 회장의 3남인 조현상 전략본부전무도 2003년 메르세데스 벤츠의 공식딜러인 ‘더 클래스 효성’을 동양 최대 규모로 설립했다. 현재 조 전무는 ‘더 클래스 효성’ 업무를 전문 경영인에게 넘기고 그룹으로 복귀한 상태다.
일본 혼다를 판매하는 이상현 KCC모터스 사장은 KCC정보통신 대주주로, IBM 초대 한국지사장을 지낸 이주용 KCC정보통신 회장의 아들이다.
인피니티 딜러인 ㈜SS모터스의 권기연 사장은 새서울석유, 덕구온천, 골드비치컨트리클럽 등을 운영하는 권용복 새서울그룹 회장의 둘째 아들이다.
김광석 참존화장품 회장의 장ㆍ차남은 모두 회사 일과 수입차 판매사업을 동시에 맡고 있다. 장남 한균 씨는 아우디를 판매하는 참존모터스를, 차남 한준 씨는 광고회사인 엔포크리에이티브를 경영하면서 지난해부터 벤트리서울을 운영 중이다.
반도체 장비업체인 한미반도체 곽노권 대표의 아들 곽동신 부사장은 2005년 서초동에서 인피니티 전시장을 열었다.
혼다 딜러인 일진모터스 김윤동 사장은 허진규 일진그룹 회장의 사위다. 김 사장은 미국 조지워싱턴대에서 MBA를 마쳤으며, 동서ㆍ현대ㆍ삼성ㆍ하나증권 등 증권업계에서 경력을 쌓아 경제 감각이 뛰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내년 3월 인천에서 혼다 매장을 내는 하정훈 피죤모터스 대표는 이윤재 피죤그룹 회장의 사위다.
수입차 업계 관계자는 “수입차가 갖고 있는 역동성과 다양성, 미적 감각 등은 젊은 경영인들이 뛰어들만한 매력을 가진 분야”라며 “2~4세 경영인들이 수입차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끈 후 그룹의 중책을 맡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유인호 기자 yi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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