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은 14일 대통령 4년 연임제 개헌을 골자로 한 개헌안 발의를 하지 않기로 했다. 노 대통령은 "18대 국회 개헌을 국민에게 약속한 각 당의 합의를 수용한다"며 "각 당이 18대 국회 개헌을 당론으로 정해준 데 대해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보며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고 윤승용 청와대 홍보수석이 발표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한나라당이 청와대의 요구에 부응해 당론 추인절차를 밟아줬고, 그 속에 4년 연임제라는 표현이 들어간 만큼 이 정도는 책임 있는 대국민 약속으로 볼 수 있다"며 "각 정파들이 개헌이라는 총론에 합의한 것은 큰 의미가 있다"고 덧붙였다.
앞서 노 대통령은 11일 6명 원내대표들의 '개헌발의 유보' 요청을 조건부 수용한다는 뜻을 밝혔으나, 이것이 개헌 포기수순으로 읽히자 "각 당이 16일 오전까지 개헌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밝히 않으면 당초 예정했던 18일께 개헌안을 발의하겠다"고 천명했다.
이에 따라 1월9일 노 대통령이 개헌을 제안한 이래 3개월 넘게 지속된 개헌논란은 종지부를 찍었다.
노 대통령의 개헌안 발의 방침 철회는 명분과 자존심에 얽매이지 않은 청와대와 한나라당, 그리고 열린우리당의 3자 교감과 정치력 발휘에 따른 결과라는 지적이다. 정치권에는 "참여정부 들어 보기 어려웠던 윈윈 게임"이라는 평가가 많다.
사실 13일 개헌당론을 박수로 재확인한 한나라당의 정책의총은 청와대의 시각에선 상당히 미흡했다. 18대 국회에서 다양한 개헌방안을 논의해 처리한다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 한 것으로, 청와대가 요구했던 4년 연임제 원 포인트 개헌의지와 구체적 일정 등을 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와대가 수용한 것은 정치권 전체가 개헌에 반대하는 상황에서 개헌안 발의는 정치적 득보다 실이 많을 것이라는 판단에 따라 일종의 타협을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한나라당의 성의표시라는 적당한 명분이 주어졌을 때 돌아섬으로써 큰 피해를 막은 셈이다. 아울러 시기적으로도 한미FTA 타결에 따른 후속대책 등 민생현안과 공정한 대선관리를 위한 청와대와 정치권의 협력이 긴요하다는 점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관계자는 15일 "솔직히 정치적으로 큰 짐을 덜었다"며 "이제 남은 임기 동안 민생현안을 마무리하는 데 역점을 둘 것"이라고 말했다.
한나라당도 12일까지만 해도 노 대통령의 개헌안 발의 강행방침에"할 테면 해보라"며 무시전략으로 일관했지만, 다음날 의총을 열어 당론을 추인하는 모양새를 갖춰줌으로써 돌파구를 열었다.
개헌안이 국회에 넘어온다 해도 한나라당이 반대하는 한 처리될 확률은 없지만, 개헌안이 발의돼 노 대통령과 정면 충돌하는 국면을 바라지는 않았다고 봐야 한다.
이 경우 예상치 못한 정치적 역풍이 불어 닥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선정국을 주도하고 있는 한나라당으로선 이 같은 정국의 불투명성이 달가울 리 없다.
우리당도 이 과정에서 청와대와 한나라당을 막후 접촉, 한나라당의 의총 등을 이끌어내는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완승과 완패가 없는 대화와 타협의 정치가 모처럼 선보였다는 평가다.
이동국 기자 eas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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