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과 교육부가 '3不' 가운데 기여입학제의 폐단을 강조함으로써 3不정책 전체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있다. 대학의 요구는 나머지 '2不'을 폐지하자는 쪽에 훨씬 많이 쏠려 있다." 한승주 고려대 총장서리가 '허수아비 전략(strawman strategy)'을 거론했다.
상대의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 전체 가운데 비중이 작은 일부를 부각시키거나 유사한 허상을 만들어 그 곳으로 초점을 몰아 자기 주장을 관철하려는 전략이다. 소송에서 주된 당사자는 뒤에 숨고 별볼일 없는 사람이나 허구의 인물을 등장시켜 쟁점을 흐리게 하는 것도 그렇다.
■ 지난해 9월 미국의 한 시사평론가가 TV에서 부시 대통령이 이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콜린 파월 전 국무장관이 정부를 향해 편지를 썼는데, "정부가 테러리스트 혐의자들에게 고문을 하는 것은 미국의 도덕성을 의심케 하는 것"이란 내용이었다. 부시 대통령은 "그렇다면 미국 국민과 동맹국들은 테러리스트와 같은 편이라는 뜻이냐"고 반박했다.
시사평론가는 "부시의 연설을 들은 Fox news(미국의 대표적 우익 방송) 시청자들은 파월 전 장관이 이슬람교로 개종했거나 테러리스트와 같은 편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 이런 일은 참여정부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현안인 개헌 문제도 그렇다. 대통령 중임제, 대선ㆍ총선시기 합리화가 주요 내용이지만 요체는 굳이 참여정부에서 해야 하느냐의 문제다. 하지만 청와대는 '반대하는 사람은 옛날로 돌아가자는 수구 세력'이라는 허수아비를 만들어 '노무현 대통령 임기 내에'라는 요체를 희석시키려 든다.
한두 가지가 아니다. 대통령 탄핵문제에서 과오를 인정하고 개선하는 대신 '감히 국민이 뽑은 대통령을…'이라는 허수아비를 세웠고, 바다이야기 사건에선 정책실패 대신 '조폭들이 문제'라는 쪽으로 초점을 옮겼다.
■ 개인 간에, 정파 간에, 여야 간에 상대를 꺾으려고 허수아비를 동원하는 것은 이해하고 넘어가도록 하자. 하지만 정부가 국민을 참새떼 정도로 여겨 허수아비를 만들어 세웠다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농부 입장에서는 참새들이 곡식을 쪼아먹는 대신 허수아비와 놀든지, 허수아비의 위엄에 겁먹고 달아나든지 충분히 목적을 달성한 것일 수 있다.
하지만 참새의 입장에서 보면 여간 속상하는 일이 아니다. 멀리서 보면 필요한 음식은 보이지 않고 자신도 모르게 허수아비의 화려한 색깔과 그럴듯한 모양에 홀린 꼴이 되고 말기 때문이다.
정병진논설위원 bj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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