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18일쯤 국회에 개헌안을 발의할 기세다. 6명 원내대표들의 요청을 조건부로 수용해 한동안 발의를 유보하겠다던 태도(11일)와는 전혀 다르다.
청와대는 12일 “16일 오전까지 각 당이 18대 국회 초반에 최소한 대통령 4년 연임제를 포함하는 원 포인트 개헌 정도는 담긴 개헌안을 처리하겠다는 점을 당론 등으로 분명히 하지 않을 경우 예정한 대로 발의한다”고 못박았다.
정치권과의 협상은 더 이상 기대하지 않고, 갈 길을 가겠다는 뜻으로 들린다. 키를 쥔 한나라당은 이날 “당론 채택은 물론이고 추후 협상도 없다”며 일축해버림으로써 청와대의 이 같은 입장은 현실화할 가능성이 커졌다.
청와대가 시한을 앞당기는 등 까다로운 조건을 내세우며 뻣뻣하게 돌아선 배경에는 당연히 노 대통령이 있다. 노 대통령은 전날 정치권에 나름대로 성의를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반향이 없는데다 상당수 언론이 청와대의 개헌안 발의 조건부 유보를 사실상의 철회로 보도한 데 대해 자극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정무관계회의를 주재하면서 이 같은 상황에 대해 강한 불만을 토로했다고 한다. 결국 개헌안 발의가 정략이 아닌, 순수한 정책적 결단임을 증명하기 위해 노 대통령이 발의를 강행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이렇게 되면 청와대의 국회의 정면 대립이 불가피하다. 당장 한나라당은 노 대통령의 개헌 관련 국회 연설부터 막겠다고 나서고 있다. 정치권과 맞서는 것은 노 대통령에게 큰 부담으로 돌아올 공산이 크다. 국회가 등을 돌려 임기 말 국정운영의 차질이 예상된다.
그러나 청와대는 개의치 않는다는 표정이다. 한 측근은 “노 대통령이 일각의 주장대로 개헌을 정략 차원에서 접근했다면 당연히 이번 기회에 접었을 것”이라며 “개헌안은 정치적 유ㆍ불리 때문이 아니라 대선 공약이기 때문에 발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의 선택을 득실이 아닌 명분으로 해석하라는 주문이다. 하지만 대다수 정파와 절반 이상 국민이 노 대통령의 개헌을 원하지 않는 현실은 거론하지 않는다. 노 대통령의 심중을 놓고 이런 말들이 나오는 것도 그래서다.
이동국 기자 eas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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