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새로운 일본 독트린을 천명했다. 대(對) 일본 정책의 무게 중심을 과거사문제에서 현실적인 ‘전략적 호혜관계’의 유지ㆍ발전으로 옮기겠다는 선언이다.
원자바오(溫家寶) 총리는 12일 중국 총리로는 처음으로 일본 국회에서 연설했다. 중국 정부의 입장을 솔직하게 설명하면서 중일 우호ㆍ협력관계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이는 과거사문제를 중시했던 장쩌민(江澤民) 정권과 차별화하는 것으로, 후진타오(胡錦濤) 정권의 새로운 일본 정책을 대내외에 선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원 총리는 역사문제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그는 “일본의 중국 침략전쟁으로 중국인은 많은 상처를 입었다”며 “그러나 그 책임은 극히 소수의 군국주의자가 져야 하고 일본인도 피해자”라고 강조했다.
원 총리는 전후 일본 정부와 지도자들이 표명한 반성과 사죄 태도에 대해 “중국 정부와 국민은 이를 적극적으로 평가한다”며 “우리는 일본측이 이를 실제 행동으로 실천해 줄 것을 진심으로 희망한다”고 밝혔다.
중국이 일본 지도자들의 역사인식 태도 표명을 공식적으로 긍정 평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일본 지도자가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 등 도발적인 행동을 자제하면 역사문제를 앞세우지 않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것이다.
원 총리는 또 일본과의 국교정상화 이후 “중국의 개혁ㆍ개방과 근대화는 일본정부와 국민의 지지와 지원을 받았다”며 “그것을 중국인은 언제까지라도 잊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는 등 배려성 언급도 많이 했다.
원 총리는 중국의 현실과 관련, “중국은 그 동안 개혁ㆍ개방으로 세계적으로 주목 받는 성과를 올려왔다”며 “그러나 인구가 많고 기반이 약해서 불균형적인 부분이 존재하는 발전도상국”이라고 말했다.
그는 “중일 경제는 강한 상호 보완관계가 있어 협력의 잠재력과 장래성이 있다”며 “양국의 경제 발전은 서로에게 위협이 아니라 기회”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최근 중국의 국방비 급증으로 인한 ‘중국 위협론’에 대해서는 “중국의 방위력은 국가안전과 통일 유지를 위해서만 사용될 것”이라며 이해를 구했다.
원 총리는 일본 국회 연설을 이번 방일의 핵심 과제로 준비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서두에서 “아베 총리의 (지난해) 중국방문이 얼음을 깨는 여행이었다면, 나의 여행은 얼음을 녹이는 것이 되기를 원한다”고 말해 양국간 관계개선의지를 분명히 했다. 연설은 중국 전역에도 생방송으로 중계됐다.
이는 중국의 객관적인 현실과 일본과의 협력 필요성을 자연스럽게 강조, 국민들의 반일 감정을 달래려는 뜻이 담긴 것으로 관측된다.
도쿄=김철훈 특파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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