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신이 쉬운 게 아니다. 배우가 스크린에서 걸어 나와 메가폰을 잡았다고 달라지지는 않는다. 색깔이 뚜렷한, 한 줄기의 영화에만 묻혀 살았던 배우일수록 더욱 그럴 것이다. 멜 깁슨도, 클린트 이스트우드도 그랬다.
<브롱스 이야기> 로 감독 데뷔 후 13년 만에 내놓은 <굿 셰퍼드> (The Good Shepherd)도 ‘배우’ 로버트 드니로(조연으로 직접 출연도 함)의 필모그래피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영화다. 1990년의 <좋은 친구들> (원제: Goodfellas)을 연상시키는 제목,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제작, 단역도 마다 않은 조 폐시의 출연. 이것만으로 어느 정도 짐작 가능하다. 좋은> 굿> 브롱스>
<굿 셰퍼드> 는 오늘의 로버트 드니로를 있게 한, 저 암울했던 1903년대 마피아들의 우정과 사랑, 음모와 배신, 복수와 죽음의 걸작들 <대부2>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좋은 친구들> 의 쌍둥이쯤 된다. 비록 마피아 대신 미국 CIA 요원 에드워드 윌슨(맷 데이먼)의 현재와 과거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좋은> 원스> 대부2> 굿>
1961년 미국의 쿠바 반혁명군 침공작전이 비밀누설로 실패한 후, 윌슨에게 전달된 녹음테이프와 한 장의 사진. 영화는 그것의 진실을 캐 가는 첩보 스릴러 임에도 불구하고, 앞의 갱스터 무비들의 존재와 영광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오히려 진한 향수(鄕愁)를 느끼려 한다.
누런 빛이 스며드는 방, 자욱한 담배 연기, 중절모에 검은 양복 때문만은 아니다.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할 조직이 국가로 바뀌었을 뿐, ‘원스 어폰 어 타임’은 윌슨이 CIA의 전신인 해골단에 가입하는 1930년대말로 거슬러 올라가고, 거기에서부터 ‘또 하나의 어둠의 세계’를 사는 남자들의 거친 세상살이와 사랑과 배신, 음모와 죽음의 서사는 시작한다.
어린시절 해군 제독인 아버지의 알 수 없는 자살. 우울한 청소년기. 친구 여동생인 클로버(안젤리나 졸리)와의 어쩔 수 없는 결혼. 청각장애가 있는 로라란 여자와 가슴 아픈 이별과 재회. 삶과 죽음을 결정짓는 믿음과 의심의 줄타기. 위험한 거래. 가족조차 믿지 못하는 현실. 그런 아버지를 둔 아내와 어린 아들의 불안과 상처. 비밀을 위해 존경하는 스승 프레더릭스(마이클 갬본)의 죽음조차 방기하고, 조직(국가)의 안전을 위해 아버지 같은 상관 알렌(윌리엄 허트)을 버려야 하는 냉혹함.
윌슨이 그 ‘비열한 거리’를 걸으며, 끝내 혼자가 되고 마는 외로움 속에서 지키고자 한 것은 무엇일까. 결혼식 날 기다리던 신부가 살해돼 오열하는 아들을 꽉 껴안고 그는 이렇게 말한다.
“너를 사랑한다”고. 이 세상 어느 아버지나 하는 이 한마디를 명대사로 만든 사람이 바로 34년 전 <대부2> 의 비토 콜리오네(로버트 드니로)였다. “마이클, 아빠는 너를 사랑한단다.” 대부2>
또 하나의 거대한 마피아, 선배인 헤이즈가 “신(God)에게 정관사를 붙이냐”고 한 것처럼 신과 같은 CIA 앞에서, 조직(국가)과 아들 중 어느 것을 선택해야 하는지 자명한 남자에게 그 말은 나약하기 그지 없지만, 간절한 진실이다. 아버지가 남긴 유서의 ‘용기 있는 남자’란 그 ‘진실’을 지키는 일이 아닐까.
그리고 그 ‘진실’이야말로 맷 데어먼이 기름기 좍 빼 더 없이 쓸쓸하고 허무해 보이는 윌슨을 자유롭게 할 것이다. <원스 어폰 어…> 의 누들스(로버트 드니로)와 비토가 그랬던 것처럼. 19일 개봉. 원스>
이대현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