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에도 소액지급결제 업무를 허용하는 방안을 놓고 재정경제부와 한국은행이 정면 대립하는 양상이 벌어지고 있다. 정부가 2008년 시행을 목표로 입법화를 추진중인 자본시장통합법(자통법)에 포함된 이 조항을 한은이 정면으로 반대하고 나섰다. 한은의 이의 제기는 은행업계 의견을 대변하는 것이어서 은행권과 증권업계 간 대리전의 성격도 짙다.
문제의 방안은 은행계좌를 통해 처리하는 지로, 송금, 카드결제, 현금 자동입출금기(ATM) 사용 등의 지급결제 업무를 증권계좌에서도 허용하는 내용이다. 한은은 증권사 사고가 나면 금융시스템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점, 은행에는 부과되는 지급준비금 제도가 증권사에는 적용되지 않는 점등을 반대 논거로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이는 표면적 이유일 뿐 실제로는 20조원 대의 지급결제 자금이 은행권에서 대거 증권사로 이동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 갈등의 핵심이다.
은행의 요구불 예금에 이자가 거의 없는 것과 달리, 증권사 종합자산관리계좌(CMA)에는 3~4%대가 붙기 때문이다. 명분은 거창하지만 따지고 보면 밥그릇 싸움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다.
자통법 의 입법 취지를 생각할 때 이 논란은 핵심을 한참 벗어난 것이다. 자통법의 목적은 금융 업종 간 벽을 허물고 규제를 없애 증권사의 대형화 전문화를 유도한다는 것이다. 이른바 한국의 골드만삭스 같은 대형 투자은행(IB)을 키우자는 생각이다. 금융의 글로벌화 추세를 생각할 때 하루 속히 입법화를 서둘러야 할 사안이다.
그런데 눈을 밖으로 돌려야 할 금융계가 지급결제 업무라는 시장을 놓고 양보 없는 싸움을 하고 있으니 볼썽사납다. 이 문제는 정치권으로도 번져 자통법의 입법에 심각한 걸림돌로 등장한 상태다. 증권사에 지급결제 업무를 허용하는 방안은 입법 취지에도 부합하고 소비자 편익을 높이는 측면에서도 맞는 방향이다.
그렇다고 자통법 통과에 암초가 되어서도 곤란하다. 필요하다면 법안에서 분리해 천천히 논의해도 늦지 않다. 밥그릇 싸움을 하다가 밥상을 뒤엎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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