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동(53)감독이 신작 <밀양> (5월17일 개봉)과 함께 돌아왔다. 진지하고 느린 말투, 주름 깊은 얼굴에 천천히 번지는 웃음이 예전 그대로다. “흥행이 잘 될 것 같냐”는 질문에 “부끄럽지 않게 찍으려고 노력했다”고 대답하는 모습까지도. 노무현 정부 출범과 동시에 자신을 ‘모시러’ 온 문화관광부 직원을 조수석에 태우고, 직접 운전해 ‘공익근무’를 하러 떠난지 4년 만이다. 밀양>
감독은 10일 서울 소격동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린 제작보고회에서 “오랫동안 쉬다가 그라운드에 나온 선수 같은 느낌”이라고 새 영화 개봉을 맞는 소감을 피력했다. 장관에서 물러나 다시 메가폰을 잡은 감회에 대해서는 그 사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영화를 많이 찍은 편은 아니지만, 영화를 할 때마다 처음 시작하는 것 같은 부담과 긴장을 느낀다” 고 말했다.
<밀양> 은 상실감에 빠진 채 죽은 남편의 고향으로 내려 온 여자와 카센터를 운영하며 건들건들 살아가는 남자의 사랑 이야기다. 그러나 이 영화에 고전적 ‘멜로’의 틀을 들이대는 것은 부질 없는 일이다. 밀양>
영화는 물과 기름을 함께 담아 둔 그릇처럼, 섞이거나 화학반응을 보이지도 않고도 잔잔한 러브스토리를 빚어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창동 감독은 무심히 지나쳐 버리는 듯한 화면 속에 ‘사랑’의 본질을 보물찾기하듯 꼭꼭 숨겨 놓는다. 그리곤 “뭐 이런 것도 사랑이라고 봐주면…좋지 않을까요?”라고 한마디 던지고 만다.
캐스팅만 놓고 보자면, 그는 분명 행복한 감독이다. 송강호와 전도연. 저만의 빛을 유감없이 발산하는, 그러나 한 작품에 스며들 수 없을 것 같은 두 배우의 아우라가 그의 손길 아래 하나로 수렴됐다. 이 영화 촬영을 끝내자마자 깜짝 결혼식을 올린 전도연은 “시나리오를 보지도 않고 출연을 결정한 것은 처음이었다” 며 “나에게서 기존의 ‘전도연’ 이상을 끌어내려는 감독의 의도가 힘에 부쳤지만, 그것이 나를 성장하게 만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창동 감독은 “4, 5년 전에 비해 제작환경이 많이 달라진 것 같다”며 한국영화 풍토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좋게 말하면 규모가 커진 것이지만, 과연 그것이 합리적인 경제성 위에서 이뤄지고 있는가 하는 의구심도 든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난해 과열된 분위기에서 완성도가 떨어지는 작품도 더러 있었겠지만 일시적 현상”이라며 “영화계 내부에서 치열한 고민을 하고 있으니 조만간 위기를 벗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유상호
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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