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색은 다 없어진 것입니까?”(이수영 회장), “필요하면 언제라도 다시 입는 것이죠.”(이석행 위원장).
재계와 노동계를 대표하는 한국경영자총협회 이수영 회장과 민주노총 이석행 위원장이 10일 얼굴을 맞댔다. 이 위원장이 이날 오전 신임 인사차 서울 마포구 경총 회관을 방문한 것이다. 이수호 전 민노총 위원장이 2004년 같은 장소에서 이 회장과 대면한지 3년 만이다.
전날 경제5단체가 정부와 노동계를 싸잡아 비난한 직후이기 때문인지 언론에 공개된 두 사람의 ‘오프닝 멘트’에는 긴장감이 묻어났다.
이 회장이 이 위원장이 입은 옷에 투쟁을 상징하는 빨간색이 없다고 지적하자, 금방 “필요하면 언제든지 입는다”는 대답이 나왔다.
이 위원장도 지난해 노사정위원회가 민노총을 배제한 채 주요 안건을 처리한 것에 대해 “민노총만 제끼고 그렇게 하셨는데…”라고 쓴소리를 했다. 이 회장은 “민노총이 중간에 나가 버렸죠. 앞으로는 인내를 갖고 했으면 좋겠다”고 반격했다.
하지만 ‘협상의 명수’답게 두 사람 모두 취재진을 물리고 마주 않은 비공개 면담에서는 의미있는 합의를 이끌어 냈다. 노사관계의 최대 현안인 산업별 교섭 방안과 장기 분규 사업장 문제 해결을 위해 경총과 민노총이 비공식 대화채널을 통해 의견을 조율해 나가기로 합의했다.
대화채널 설치는 개별 기업의 기피로 난항을 겪고 있는 산별 노사 협상의 물꼬를 트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큰데, 양측이 타협의 묘를 발휘한 끝에 이뤄졌다.
경총 관계자에 따르면 민주노총 이 위원장은 “산별교섭에 사용자측이 적극 참여하라”고 주장한 반면, 이 회장은 “산별 교섭에 이어 기업별 교섭을 또다시 벌어야 하는 현재의 체제는 문제가 많다”고 맞섰다.
경총 관계자는 “양측 모두 논리가 있는 만큼, 현재의 ‘고비용ㆍ저효율’ 협상 구조를 타개를 위한 논의 기구를 만들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재계와 노동계 대표는 고용ㆍ산재보험에 대한 정부의 간섭을 배제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의견을 접근시켰다. 2004년말 현재 적립액이 8조원을 넘어선 고용ㆍ산재보험 운영을 재계와 노동계가 직접 맡겠다는 것이다.
경총 관계자는 “기업과 근로자의 부담으로 적립되는데도 불구, 노동부가 좌지우지하는 현재의 체제는 문제가 많다는데 공감대가 형성됐으며 이를 토대로 구체적인 방안이 나올 것”이라고 소개했다.
양측은 또 현재 민주노총 산하 사업장 가운데 노사분규가 3개월 이상 이어지고 있는 하이닉스반도체와 매그나칩, 기륭전자 등의 문제 해결을 위해서도 노력키로 했다.
그러나 골프장 경기보조원, 학습지 교사 등 특수형태 근로종사자의 단체행동권을 일부 인정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또 한국노총과 경총이 발족한 노사발전재단에 참여하는 것에 대해서도 민노총이 거부 의사를 밝혔다.
면담을 끝내면서 이 위원장은 이 회장에게 답방을 요청했으며, 이 회장은 흔쾌히 수락한 것으로 전해졌다.
조철환 기자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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