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여! 승리여!'
1999년 5월 23일 일요일 밤, 제43회 ‘미스 코리아’대회가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진행됐다. 1부에서 2부로 넘어가는 막간은 미스 코리아 후보들이 재능을 보여주는 공연 순서. 회전무대가 지하에서 서서히 올라오면서 소프라노가 울려오기 시작한다. 푸치니의 오페라 ‘트란도트’ 3막 중의 아리아 ‘공주는 잠 못 이루고(네쑨 도르마)’이다.
소프라노를 열창한 장본인은 뜻밖에 이날 단독 사회를 맡은 앵커 백지연이였다. 그녀는 화려한 검정색 실크 드레스를 입고, 자기 자신의 하이킥 라이프를 구가하는 양 ‘승리여! 승리여!(빈체로! 빈체로!)’를 열창하며 떠올랐다. 당시 나이 서른다섯 살. 초등학생 시절 방송 어린이합창단 단원이었고 중학생 시절 성악 개인지도를 받은 경력은 그녀의 긴장감 넘치는 복식 발성의 기초가 된다.
나는 스물네 살에 9시 뉴스데스크에 파격적으로 발탁되어 엄기영과 나란히 앉아 텔레비전 주력 뉴스를 소화해 내는 백지연을 보면서, 프랑스의 ‘20시 뉴스(주르날 뱅퇴르)’의 단독 앵커 자리를 확립한 크리스틴 오크렌트를 떠올렸다.
●성장통(成長痛)
1991년 한국의 유엔 가입이 결정되던 날, 스물일곱 살이 된 앵커 백지연은 좁은 스튜디오를 벗어나 유엔본부 만국기 앞에 서서 뉴스를 진행했다. 보도국 국제부 기자로 발령이 나서 뉴스 저널리스트로 땅에 뿌리를 내리는 첫 외출이었다. 그 날로부터 1년이 지난 1992년 9월, 백지연은 갑자기 소용돌이의 한가운데 휩싸인다.
MBC 노조가 단체협약 결렬로 파업에 들어가자 스물여덟 살의 백지연은 앵커 석에 남아 있느냐, 앵커 석을 버리고 파업에 가담하느냐를 놓고 회사와 노조 양면의 협공을 받았다. ‘MBC 파업의 상징 백지연’은 내면투쟁을 계속하다가 결국 앵커 석을 아주 떠나는 고통스러운 결정을 내린다.
20대에 자신만만하게 하이킥을 거듭하던 그녀에게 앵커 석 이탈은 큰 시련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7개월 만에 다시 돌아와 다시 왕성한 활동을 하며 최장수 기록을 세운다. 그녀는 30대가 되어 근거 없는 악의적 루머로 또 한 번 삶의 질풍노도를 만났으나 진실을 밝혀 외로운 싸움을 이겨낸다. 이런 성장통을 겪으며 백지연은 발효하고 성장했다.
●낙상 매(落傷鷹)의 힘
백지연은 당당하고 자신만만하다. 그러나 인생의 능선에서 숨이 차고 등이 시리다고 느끼는 순간이 많다고 고백한다. 그녀는 내 안에 잠재한 ‘낙상 매’의 힘을 믿는다고 쓴 적이 있다. 공중에서 어미 매가 떨어뜨리는 먹이를 차지하려고 위험을 무릅쓰다가 둥지에서 떨어져 다치는 새끼는 더 억센 매로 자란다. 힘과 영향력이 자기성장을 보장한다는 그녀의 생각을 전하는 낙상 매다.
잘 나가는 듯 보이던 앵커 백지연이 ‘인생행로’를 바꾼 것은 불혹의 40대에 접어들던 2005년 중후반. 경영자로 거듭나서 무주공산에 깃발 꽂듯이 ‘백지연(PJY) 커뮤니케이션즈’를 세우고 그 우산 아래 ‘커뮤니케이션 전략 컨설팅’ ‘백지연 아카데미’ ‘패션 스타일링’을 세웠다.
백지연 커뮤니케이션즈 유리문을 들어서면 상하좌우가 모두 상아 빛(아이보리)인 회랑이 이어진다. 상아빛은 겉으로 보면 차갑지만 내면은 온기가 배어있는 색이다. 아이보리 회랑 좌우 벽면은 백지연의 저서 표지들을 확대한 패널이 걸려있다. 한 권의 책은 소우주를 담는다고 했으니 글쓰기를 실행하는 자는 스스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인다.
인터뷰 하던 날 그녀는 화장을 하고 상아 빛 정장을 입고 나왔다. 화장을 안 한 얼굴이 더 좋다고 말하자 그녀는 이렇게 받는다.
“촬영이나 방송이 있으면 화장을 합니다. 이것도 일의 일부죠.”
-40대에 들어가면서 백지연 커뮤니케이션즈를 열게 된 결정적 동기는?
“앵커라는 일은 저의 또 다른 자아로 느껴지는 듯한 일입니다. 그러나 방송이라는 것이 전파의 속성상 축적이 없는 데 가끔 회의가 있었습니다. 더불어 제가 결정권을 가지는 저의 플랫폼을 갖고 싶은 이유도 있습니다.”
-백지연 커류니케이션즈 운영 목적은 영리추구인지.
“영리추구는 아닙니다. 이제 나 스스로를 위해, 그리고 필요한 누군가를 위하여 또 다른 일을 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경영 상황은 우수한 상황이라고만 말씀드리겠습니다.”
-무엇을 가르치시는지.
“저희 회사의 주력 사업은 커뮤니케이션 컨설팅입니다. 다른 나라의 예를 많이 조사하고 연구하여 우리의 문화적 특성을 가미한 커리큘럼을 개발하느라 지난 2년 동안 많이 애썼지요. 저희 회사는 전속 강사 10명과 외부 미디어 종사자 강사 6명과 계약하고 있습니다.”
-환갑 쯤 되면 어떤 새 도전을 할 수 있으신지.
“저는 단기계획과 장기계획을 세우며 살지만 너무 긴 장기계획은 세우지 않습니다. 오늘 열심히 살면 미래가 늘 보장되고 밝았다는 것이 제가 살면서 배운 것 중 하나입니다. 분명한 것은 60세에도 삼모작 내지 사모작을 하고 있거나, 아니면 전략을 바꿔 이모작의 심화라는 새로운 구상을 할지도 모르죠.”
상아회랑 왼편에는 외국 방송 저널리스트 이름을 붙인 세 개의 강의실이 있다. 그중 하나가 이탈리아 출신으로 인터뷰 및 전쟁 전문 저널리스트인 오리아나 팔라치. 만약 하느님이 있어 인터뷰를 할 수 있다면 다음 질문도 준비하겠다고 말한 뉴스 저널리스트다.
“죽어 없어질 생명을 만든 것을 보면 당신이 가짜라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어쨌든 우리에게 무엇 때문에 죽음을 안겨 주었는가. 한번 태어난 인간이 왜 죽어야 하는가. 그러니 이 질문부터 시작하자. 왜 그렇게 했는가.”
백지연은 다혈질적 성미로 세계 권력자들과 대결적 선동적 인터뷰를 한 팔라치와 대조를 이루는 ‘차가운’ 체질이다. 그런 백지연이‘설탕과 소금’의 조화를 통해 바야흐로 ‘40대의 숙성’을 시작했다.
●백지연의 반성문
백지연은 이번 주 초에 발간한 다섯 번째 저서 〈나이스 포스(Nice Force)〉 표지에 올린 찬 이미지의 자기 사진이 차게 보여서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말한다. 백지연을 잘 아는 사람은 그녀는 가슴에 품고 있는 여리고 부드러운 힘으로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형성한다고 생각한다.
겨울바람이 차던 어느 날, 백지연은 김이 호호 나는 단팥죽을 먹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문제는 껍질이 벗겨질 정도로 팥은 물렀건만 설탕을 아무리 넣어도 단맛이 제대로 나지 않았다. 그녀는 그때 소금과 설탕의 작용을 처음으로 깨닫는다. “소금을 넣어야 단맛이 제대로 나거든.” 어머니의 이 한마디로 처음 만든 단팥죽은 실패작에서 성공작으로 바뀌었다.
우리가 사회 안에서 사람들과 끊임없이 소통할 수 있는 중요한 힘을 그녀는 외유내강한 ‘나이스 포스’라고 개념화했다.
“끊임없이 고민하다가 발견한 이 새롭고 강력한 ‘나이스 포스’가 어쩌면 나와 당신이 늘 찾아 헤매던 21세기 성장의 힘일지도 모릅니다.”
■ '기분좋은 QX'가 제공하는 트렌드 ABC/ 이모작 시대에서 삼모작 시대로
머지않아 인생 3모작이 하나의 물결로 불어 닥칠 것이다. 지금까지는 60세 은퇴기에 새 출발을 일구어내는 것이 전형적인 이모작 인생이었다.
그러나 평생직장이 없어지고 자기발전을 위한 조기퇴직이 대세가 되어가면서 40세를 전후하여 변신하고 60세를 전후하여 한 번 더 변신을 꾀하는 삼모작 인생이 늘어갈 수밖에 없다. 한 개인이 일생동안 성장하기를 멈추지 않은 준비사회가 온다는 것이다.
40세 전후의 변신은 고용불안 속에서 새로운 삶이 더 유리하다고 느끼는 사람들, 전망이 확실한 전문직 종사자나 안정된 삶의 조건을 마련한 중산층 지식인 사이에 더 급속히 퍼진다.
평생학습과 삶의 질을 추구하는 여가사회의 영향 때문이다. 이들은 기존의 전문분야나 지식을 활용하여 새로운 직업을 개척하는 일모이확(一毛二穫) 인생, 기존의 직종과 기술을 벗어나 40세에 새로운 학습해서 활동분야 자체를 바꾸는 이모이확(二毛二穫) 인생으로 나누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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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찬 르포르타주 저널리스트 ann-bc@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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