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A초등학교는 최근 학교에 급식 재료를 납품하는 업체를 일부 교체키로 했다. 식재료 납품업체를 바꾸는 건 흔한 일이지만, 이 학교 B교장의 마음은 딴 데에 가 있었다. 학교에 햄버거와 도넛 등 각종 가공식품을 납품해온 J사 대신, B교장은 다른 업체 3곳을 점 찍어 놓았던 터였다.
자신의 입맛에 맞는 납품업체를 찾아내기 위한 B교장의 ‘은밀한 외출’은 지난달부터 시작됐다. 외출은 모두 업체 차량을 이용해 이뤄졌다. 가공식품 납품업체인 C사에 가서는 “판매액의 5%를 사례금으로 달라”고 요구했다.
또 다른 업체인 D사를 방문해서는 “사례금을 얼마나 줄 수 있느냐”고 묻기도 했다. 채소와 과일을 파는 E사도 예외는 아니었다. 당연한 ‘사례비’로 생각했기 때문에 별다른 죄의식도 느끼지 않았다. B교장의 이 같은 행각은 서울시교육청에 꼬리가 잡히면서 중단됐다.
B교장은 그러나 2005년 9월 부임 이후 J사 등 급식재료 납품업체 2곳에서 160만원을 받는 등 각종 기자재 납품ㆍ공사 계약 업체 등으로부터 410만원을 챙겼다. 돈은 주로 업체를 찾아간 자리에서 요구했지만, 받은 장소는 ‘홈 그라운드’인 교장실을 택했다.
B교장의 금품 수수 이력은 이 뿐만이 아니다. 2005년 8월엔 수학교구 3세트를 업체에 반품하면서 되돌려 받은 돈을 포함, 각종 물품대금 750만원을 그대로 자기 주머니에 넣었다. 교구 세트는 원래 도서 바자회 수익금과 학부모들의 기부 등으로 마련한 것이다.
바로 전에 재직했던 F초등학교에서도 각종 공사 계약 업체로부터 120만원을 교장실에서 직접 챙겼다.
이런 상황에서 회계처리가 제대로 됐을 리 만무했다. 설계 금액이 3,000만원(추정가격) 이상일 경우 공개 경쟁입찰을 벌여야 하는 규정도 교묘히 피해갔다. 2005년 7월에는 학교 건물 안팎에 부식방지 칠 공사를 하면서 건물 내부와 바깥을 따로 나눠 공사 내역을 쪼개 영세 업체와 계약을 맺는 지혜를 발휘했다. 학교발전기금에 포함해야 할 바자회 수익금은 따로 떼어 개인용도로 썼다. 닥치는 대로 돈을 챙긴 셈이다.
학교 내부자의 제보로 이 같은 사실을 밝혀 낸 서울시교육청은 10일 B교장을 직위 해제하고 검찰에 B교장과 함께 관련 업체 3곳을 고발했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올해 1월 부교육감과 감사담당관 앞으로 비위신고 직통전화를 개설한 후 처음 들어온 제보”라며 “학교 운영이 더 투명해지려면 내부 고발이 활성화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원기 기자 on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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