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3월말 한국경제는 거침없는 질주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3저 호황에 힘입어 3년째 연평균 12%의 고도성장을 지속하면서 경제 전반에 포만감과 낙관론이 팽배했다. 해외에서 들어온 풍부한 자금이 주식시장에 몰리면서 종합주가지수가 사상 처음 1,000을 돌파한 바로 그 시기다.
80년대 초반 100만명에 불과하던 주식 인구가 900만 명을 돌파하면서 주식투자 대중화시대가 열렸다. 증권사 객장에는 아이를 들쳐 업은 주부와 밭일을 하던 농부까지 모습을 드러냈다. 성급한 언론들은 그 해 지수가 1,500을 돌파할 가능성도 있다고 보도를 했다.
▦ 그러나 경기가 침체국면으로 빠지면서 주가는 92년 500 밑으로까지 추락했다. 외국인에 대한 주식투자 허가에 힘입어 94년 1,000을 회복하기도 했으나 잠시 뿐이었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6월에는 280까지 무너져 내렸다.
언제나 등락을 거듭하는 것이 주가의 속성이지만 한국 증시의 널뛰기는 유별났다. 그런 쓰린 경험이 작용한 탓인지, 18년 만에 코스피지수(구 종합주가지수)가 1,500을 돌파했는데도 시장 분위기는 차분하기만 하다. 증시가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는 의미는 부여하지만 과거 같은 잔칫집 분위기는 전혀 아니다.
▦ 사실 세계 증시가 호황을 구가하던 지난 몇 년간 한국 증시는 부진을 면치 못하는 '왕따'였다. 지난해 베트남 증시는 144.48%가 올라 상승률 세계 1위를 기록했다.
중국 상하이시장도 지난해 130%가 급등한 데 이어 올해도 연일 최고가를 경신해왔다. 중국 증시는 한 달에만 250만개의 계좌가 새로 개설될 정도로 '묻지마 투자' 열풍이 뜨겁다. 한국 증시의 부활은 그런 점에서 때늦은 감마저 있다. 주가지수가 실물경제 흐름을 반영한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최소한 침체된 분위기 전환에는 도움이 된다는 점에서 어쨌든 긍정적이다.
▦ 1,500에 대한 무덤덤한 반응은 투자패턴의 변화와 무관치 않다. 지수 1,000 당시에는 개인의 투자비율이 54%(주식수 기준)를 넘었지만, 2005년 말에는 34%로 낮아졌다. 직접 투자가 이렇게 줄었으니 개인들이 주가에 일희일비할 이유도 그만큼 줄어든 셈이다. 주식시장은 산업자본의 젖줄이라고 불린다.
그러나 활황장에도 불구하고 요즘 신규상장 실적은 1999년이후 최저치라고 한다. 증시를 통해 기업이 자금을 조달하는 자본시장 기능이 그만큼 위축됐다는 얘기다. 지수 못지않게 내실도 함께 오르면 좋겠다.
배정근 논설위원 jkp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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