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12월. 미국산 와인 ‘모건 데이비드 콩코드’는 치욕의 눈물을 흘려야 했다. 8,000원(권장소비자가)의 싼 가격을 무기로 한 때는 국내 와인 판매 1, 2위를 석권(㈜와인나라 집계)했던 베스트셀러. 하지만 한ㆍ칠레 FTA이후 칠레산 와인의 대공격에 밀려 결국 2006년엔 톱10밖으로 밀려나고 말랐다.
#2007년3월. 국내 칠레 와인의 베스트셀러 에스쿠도 로호에게 비보(悲報)가 날아들었다.
한ㆍ미 FTA타결로 미국 와인의 관세가 사라진다는 것. 프랑스산 와인과 더불어 한국 와인시장을 양분했던 칠레 와인은 가격인하로 맞불을 놓으며 결전에 대비하고 있다.
‘와인대전(大戰)’이 임박했다. 한미FTA 타결로 15% 관세가 즉시 철폐되는 미국 캘리포니아산 와인의 대대적인 ‘한반도 상륙작전’이 예상됨에 따라, 기왕의 한국 와인시장을 지배하고 있던 프랑스와 칠레산 와인측에도 비상이 걸렸다.
사실 와인시장 만큼 FTA에 민감한 곳도 없다. 칠레산 와인이 전통의 1위 프랑스산 와인을 위협할 만큼 급성장한 것도 FTA(한ㆍ칠레)의 영향이 컸고, 이제 미국산 와인의 돌풍이 예상되는 것 또한 FTA(한ㆍ미) 때문이다. 어쨌든 국내 와인시장은 두 차례의 FTA를 통해 프랑스-칠레-미국의 치열한 ‘삼국지’가 펼쳐질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와인매장에서 판매되는 6만6,000원에 판매되는 미국 캘리포니아 와인(나파밸리 멀로)의 경우, 15% 관세가 사라지면 단순계산해도 5만6,000원으로 낮아진다.
현재 미국 와인이 칠레산보다 평균 15~20% 비싸다는 점을 감안하면, 관세철폐 이후 대등한 가격경쟁이 가능한 셈이다. 더구나 달러 약세의 지속도 가격경쟁력에 호재다.
미국산 와인측은 품질면에서 칠레 압도를 자신하고 있다. 실제로 미국 최대포도재배지인 캘리포니아 나파밸리 지역은 기후와 토양 등에서 본고장인 프랑스 보르도 지역과 가장 흡사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해 여름 열린 블라인드 태스팅(Blind Tastingㆍ라벨을 보지 않고 시음만으로 점수를 매김)에서 캘리포니아 와인이 프랑스 와인을 누르고 1위를 차지했던 적도 있다.
상품종류와 재배지역(워싱턴 오리건 캘리포니아 등)이 다양하다는 것도 미국산 와인의 장점. 때문에 미국산 와인은 8,000원짜리 저가 와인부터 최고급 와인까지 폭넓은 포트폴리오가 가능하다.
한 와인전문가는 “미국의 와인 마케팅능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며 “품질 마케팅에 가격까지 경쟁력을 갖춘다면 칠레산은 물론 프랑스산 와인도 아성을 위협받을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미국산 와인이 프랑스와 칠레의 벽을 쉽게 넘지는 못할 것이란 관측도 있다. 우선 15% 관세인하에도 불구하고 주세 교육세 등을 감안하면 실제 가격인하여력은 여기에 못 미친다.
게다가 미국 와인의 수입구조는 생산업체가 한국 수입업체에게 독점적 권한을 주는 형태라, 관세철폐로 인한 실질적 수혜자는 소비자 아닌 와인 수입상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 또다른 와인전문가는 “유통구조가 변하지 않으면 소비자가 느끼는 체감가격하락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칠레 와인의 경우 가격 대비 품질만족도로 인해 이미 상당한 저변을 확보한 상태이고, 프랑스 와인도 ‘최고급’이미지가 굳어 있어 특히 고급시장의 지배력은 흔들림이 없을 것이란 분석이다.
다만 미국산 와인들이 가격공세에 나선다면, 프랑스나 칠레 와인 어느 정도 가격인하는 불가피하고 이 경우 시장경쟁은 뜨거워질 수 밖에 없다는 전망이다.
지난해 우리나라가 수입한 와인은 총 8,860만달러로 프랑스와인(3,270만달러)로 압도적 1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칠레(1,538만달러) 미국(1,248만달러) 이탈리아(890만달러)가 그 뒤를 잇고 있다.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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