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타결 후 협정문에 명시되지 않는 미국의 ‘민원성’ 요구들이 속속 불거져 나오고 한국 측이 협정문과는 별도로 일부 합의해준 사실이 드러나 혼란을 주고 있다.
FTA와 직접 상관이 없는 미국측 요구들은 분명 ‘반칙’이지만, 한국이 협상 타결을 위해 거절하지 못한 쟁점들이 ‘이면합의’ 의혹으로 이어지는 실정이다.
현재 협정문에는 존재하지 않으면서 한국 협상단을 괴롭히고 있는 사안은 대략 4가지다. 미국산 뼈 포함 쇠고기 수입 약속을 했는지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는 쇠고기 검역 문제가 대표적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구두약속 발언과 박홍수 농림부 장관의 원칙론 사이에 미묘한 뉘앙스차가 느껴지고 있어 5월 국제수역사무국(OIE)의 미국에 대한 등급 판정 이후 정부 행보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미국 유전자변형생물체(LMO)의 안전성 검사 생략 문제와 조류 인플루엔자(AI) 지역화 인정 문제 등도 미국이 FTA 협상 과정에서 제기한 사안이지만 협정문과는 별도로 논의가 진행될 사안이다.
일부에서 미국 LMO에 대한 안전성 검사를 생략하기로 정부가 합의해 줬다는 주장이 제기되자 산업자원부는 지난 4일 한미간 LMO 기술협의 내용을 영어 원문으로 공개하며 “국내 제도의 변경과 관련된 사항은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관철했다”고 반박했다.
미국이 한미 FTA 5차 협상에서 제시한 AI 지역화 인정 문제는 미국의 특정 주에서 AI가 발생했을 경우 미국산 전체가 아닌 해당 주에 대해서만 제한적으로 수입금지 등의 조치를 내리는 것을 말한다.
이는 통상 현안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쇠고기 검역 문제처럼 무역시스템을 논의하는 FTA 협상의 의제가 될 수 없다는 것이 한국측 입장이었다.
김종훈 한국측 수석대표는 “쇠고기와 LMO 위생검역, AI의 지역화 문제 등은 FTA 협상과는 별개로 추후 논의와 협의를 계속하는 부분인데, 일부에서는 이를 양보나 이면합의라고 주장하고 있다”며 “이는 오해이자 논리적 비약”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한국측이 미국의 승용차 관세 즉시 철폐를 얻어내기 위해 미국산 수입 승용차에 대한 배출가스 자기진단장치(OBD) 부착 의무를 2008년말까지 면제해주기로 합의한 것은 FTA와 상관없이 미국의 ‘민원성’ 요구를 들어준 대목이다. 통상교섭본부는 지난 4일 한미 FTA 분과별 세부 협상 내용을 발표하면서 이 같은 사실을 공개했다.
외교부 관계자는 “OBD 관련 합의 사안은 협정서에 들어갈 내용이 아니고 별도 조치가 필요한 부분”이라고 말해 이 문제가 ‘민원사안’임을 시인했다.
이진희 기자 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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