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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섭의 니하오] 생존투쟁 새 이정표 中 ‘알박기 영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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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섭의 니하오] 생존투쟁 새 이정표 中 ‘알박기 영웅

입력
2007.04.08 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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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사회에서 부도덕한 얌체 행위로 간주되는 ‘알박기’가 중국에서 영웅을 낳았다. 2년 7개월간 이어졌던 충칭(重慶) 알박기 사건의 주인공 양우(陽武) 우핑(吳萍) 부부가 2일 택지 개발자와 합의하면서 사건을 종결하자 이들은 공민권 행사의 모범으로 칭송되고 있다.

식자층이 주로 보는 주간지 난팡조모(南方週末)는 5일 ‘우연한 사건이 역사 진보의 계기를 만든다’라는 사설을 통해 “충칭 알박기는 민초가 현대 공민의 권리를 쟁취한 것으로, 중국 법치사의 이정표”라고 극찬했다. 베이징(北京)의 일간 신징바오(新京報)도 “원만한 타협으로 끝난 알박기 사건은 모두가 승리한 사건”이라고 평했다.

언론이 찬양한 이유는 중국 현실에서 알박기가 약자가 목숨을 걸고 벌이는 처절한 생존투쟁이기 때문이다. 모든 토지가 국가 소유이고 개인들은 점유자일 뿐이라는 법 현실에서 지방정부와 개발업자들은 철거민들의 주택들을 너무도 손쉽게 불도저로 밀어버리고 있다.

하지만 양씨는 달랐다. 2004년 8월 자신의 집이 철거돼 재개발된다는 공고가 나붙자 280가구의 이웃들은 순응했지만 양씨는 버티기에 돌입했다. 그 해 10월 양씨 집에 전기와 물이 끊어졌다. 도로에서 양씨 집으로 이어지는 길마저 파헤쳐졌다. 양씨 집은 허허벌판인 개발예정지 내 고도(孤島)가 돼버렸다.

하지만 적절한 보상이 없는 한 물러설 수 없다는 태도를 고수했다. 결국 현지 법원은 올 3월 22일 양씨 퇴거를 명령했고, 양씨는 친구들이 제공하는 물과 음식에 의지, 12일간 목숨을 건 투쟁을 진행했다. 이후 양씨 부부는 다른 지역의 집을 보상받는 조건으로 타협하면서 사건의 종지부를 찍었다.

양씨가 싸운 이유는 철거 보상비가 적어 빈민으로 내몰릴 처지였기 때문이었다. 선전에서 알박기 싸움을 하는 장(張)모씨도 주변 아파트 가격이 ㎡당 1만6,000위안(192만원)이지만 보상가는 6,500위안으로 책정했다며 3년째 철거를 반대하고 있다.

하지만 양씨 부부의 승리를 가져온 또 다른 원동력은 이 사건을 ‘철거민의 한(恨)’으로 간주했던 언론과 네티즌이었다. 중국 대다수 신문들이 이 사건에 침묵하고, 1,000만명 이상의 네티즌들이 이들을 응원하는 메시지를 보내지 않았다면 중국 지방정부와 개발업자는 결코 물러서지 않았을 것이다.

신징바오는 “매체들의 이성적이고 적극적인 보도는 우리로 하여금 미래 공민의 권익수호의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평가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사실 양씨 부부는 이 집에서 살아온 실거주자란 점에서 알박기란 꼬리표가 붙는 것 자체가 부적절하다. 한국식으로 표현하면 철거민에 가깝다.

중국 최초의 사유재산 보호법인 물권법이 오는 10월 시행될 예정인 가운데 터진 충칭 알박기는 매우 상징적이다. 지금까지 공권력 앞에서 중국 민초들은 어떤 목소리도 내지 못했지만 이제 민초들이 자신의 권익을 지키기 위해 싸운다면 얼마든지 지킬 수 상황에 들어선 것이다. 언론이 이 사건을 법치사의 이정표라고 치켜세운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베이징=이영섭특파원 youn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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