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영남지역 한나라당 A의원의 L보좌관이 사표를 내고 국회를 떠났다. 이유는 ‘가는 길이 달라서’였다. A의원은 ‘친 박근혜 전 대표’ 성향이지만 L씨는 이명박 전 서울시장측과 줄곧 깊은 관계를 유지해왔기 때문. 결국 L씨는 이 전 시장 캠프로 들어갔고, A의원도 굳이 만류하지 않았다.
이 전 시장과 박 전 대표의 세 다툼이 치열해지면서 당내 같은 둥지 안에서도 자신의 지지 성향에 따라 편이 갈리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편이 다른 의원과 보좌진이 ‘위험한 동거’를 지속하기도 하지만, 끝내 결별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영남지역 B의원은 2월 이 전 시장 캠프에서 요직을 맡았다. 그러자 보좌관 P씨는 손학규 전 경기지사 캠프에 합류했다. P씨는 손 전 지사의 탈당 후에는 손 전 지사 캠프를 떠났다.
중부권 C 의원은 박 전 대표 캠프에 합류했으나 그의 보좌관은 이 전 시장 캠프와 연락을 주고 받으며 C 의원의 대선주자 지지 성향을 바꾸기 위해 설득 작업을 벌여왔다. D의원 방에서는 의원은 ‘친 박근혜’, 보좌관은 ‘친 이명박’으로 갈려 있어 보좌관이 진로 선택을 놓고 고민 중이다.
국회 보좌진 가운데도 대구ㆍ경북 중심의 박 전 대표 지지 모임과 고려대 출신 중심의 이 전 시장 모임이 따로 있다. 대부분의 보좌진들은 자신이 모시는 의원 성향을 따라가게 마련이지만 개인적 연고나 정치적 신념ㆍ노선에 따라 다른 대선주자를 지원하게 된다. 의원과 보좌진이 각기 다른 주자를 지지할 경우 서로를 경계하는 희한한 풍경이 연출되기도 한다.
한 초선 의원은 “나의 보좌관이 한 유력 대선주자를 선호하고 있어서 그 주자에 대한 얘기를 할 때면 논쟁이 벌어지기도 해 최근에는 입조심을 하고 있다”며 “또 상대 대선주자 진영의 의원들이 찾아올 때면 보좌관 눈치가 보이기도 한다”고 털어놓았다.
비교적 중립을 유지하는 의원들도 특정 주자를 선호하는 보좌진으로 인해 영향을 받는다. 영남 출신 F의원의 보좌관 C씨는 이 전 시장 핵심 참모의 동생이고, 중부권 G의원의 전 보좌관 K씨는 이 전 시장 캠프에서 활동하고 있다. 때문에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F, G 의원은 ‘친 이명박’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한 지붕 두 가족’의 모습은 당내 사무처에서도 나타난다. ‘국장 따로, 부장 따로’ 현상이 종종 눈에 띈다. 사무처의 한 부서에서는 국장이 ‘친 박’, 부장ㆍ차장은 ‘친 이’ 성향이다. 때문에 퇴근 시간 이후에는 자기 편들끼리 모이는 회식 자리에 참가하고, 업무 시간에도 같은 편끼리만 몰래 전화를 주고 받고 쑥덕대는 경우가 잦다.
한 당직자는 “대선주자 지지 성향이 다른 사람들은 업무상 필요한 말 이외는 서로 말도 거의 안한다”면서 “그들은 혹시 상대측에 이야기가 흘러 들어갈 것을 우려해 중간 지대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깊은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위로는 당 지도부에서부터 의원과 보좌관은 물론 하위 당직자에 이르기까지 양강 대선주자 편으로 나뉘어 끼리끼리 행동하고 서로를 향해 으르렁대는 모습이 요즘 한나라당의 풍경이다.
염영남 기자 libert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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