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랭크 태슐린 지음ㆍ위정현 옮김 / 계수나무 발행ㆍ64쪽ㆍ7,500원
겨울이 왔다. 기러기가 남쪽 하늘로 날아가고 낙엽이 쌓이자 숲에 사는 곰은 깊은 잠에 빠져든다. 그런데 이게 웬걸! 겨울잠을 깨어보니 숲은 온데 간데 없이 사라지고 곰은 바쁘게 돌아가는 공장 한 가운데 서 있다.
“내가 왜 여기 있지?”라며 어리둥절하는 곰. 그러나 공장 감독, 인사과장, 사장, 심지어 서커스단의 곰들까지 그를 공장 일꾼으로 몰아붙인다. 아무리 아니라고 주장해도 누구 하나 곰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언뜻 보면 이 책은 숲의 파괴를 고발하고,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가치를 설파하는 환경동화로 읽힌다. 그러나 메시지는 좀 더 복잡하다. ‘삼인성호(三人成虎)’라는 말이 있듯, 톱니바퀴 같은 조직에서는 그 구성원이 조작된 진실에 쉽게 세뇌된다. 곰은 매스미디어로 조작된 사실을 진실이라고 믿어버리는 현대사회의 무력한 개인을 은유한다.
그러고 보니 반복되는 거짓에 굴복, 공장의 컨베이어 벨트 앞에 서서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기계를 돌리는 곰의 모습은 <모던 타임즈> 에 나온 찰리 채플린의 슬픈 눈을 연상시킨다. 모던>
이 작품이 선보인 2차 대전 직후의 미국은 전쟁 특수로 번영을 구가하던 시기다. 그러나 그처럼 난만한 자본주의의 그늘에서 동화 속의 곰처럼 자기정체성의 위기를 겪는 개인들도 늘어갔다.
공장이 폐쇄되자 갈 곳을 찾아 헤매는 곰. 다시 겨울이 오고 눈이 코와 턱을 덮었지만 곰은 “나는 곰이 아니지. 나는 겨울잠을 자면 안되지”라며 어쩔 줄 몰라 한다. 이 절명의 순간에 불현듯 자연의 품으로 돌아와 자신의 모습을 직시하고 잠을 청하는 곰의 모습에서 ‘자연은 가장 위대한 잠언’이라고 말한 어느 시인의 말을 떠올릴 수 있을 것 같다.
작가 프랭크 태슐린(1913~1972)은 1930년대 워너브라더스에서 <포키피그> 시리즈를 그려 만화가로서의 입지를 다진 뒤 LA타임스에서 시사만화를 그렸다. <곰이라고요, 곰!> 은 태슐린이 어린이를 위해 발표한 동화시리즈(곰, 주머니쥐, 바다거북, 세계)의 첫 편이다. 위트 넘치는 등장 인물의 다양한 표정이 만화경 속의 세상을 보는 느낌이다. 초등학교 저학년용. 곰이라고요,> 포키피그>
이왕구 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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