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脫) 중심 발(發), 두 환상이 당도했다. 하나는 포르투갈, 또 하나는 아프리카 콩고. 주제 사라마구(85)와 알랭 마방쿠(41)가 쏘아 올린 환상의 포탄이 문학의 새로운 지평으로 초대한다.
두 작가는 각각 ‘환상적 리얼리즘’, ‘아프리카 환상 문학’의 기수 등으로 불리며 현대 문학계에서 든든한 위상을 구축했다.
공간적ㆍ시간적으로 까마득한 거리를 사이에 두고 있는 두 작가지만, 약속이나 한 듯 커다란 상으로 세상과 소통한 사람들이다. 사라마구는 1998년 노벨문학상으로, 마방쿠는 프랑스의 대표적 문학상에 드는 불어권오대륙상(2005년)과 프랑스의 4대 문학상인 르노도상(2006년)으로 새삼 존재를 부각하기도 했다.
역사와 인간을 통찰하는 혜안, 독자들의 의식을 교묘히 포섭하는 입심 등은 문학의 힘을 웅변하고 있다. 세대를 훌쩍 뛰어넘는 두 사람의 신작이 나란히 출간됐다.
■ '눈 뜬 자들의 도시'
눈 뜬 채로 눈이 머는 괴질(실명 전염병)이 익명의 도시를 뒤덮는다. 괴질의 정체를 밝혀내지 못한 당국은 함구령으로 대응하지만 급기야 선거에서 8할이 백지 투표를 하는 사태가 발생하고 만다. 경악한 권력은 계엄령까지 선포, 도시를 철저히 차단한 채 그 주범을 찾는 데 혈안이 돼 있다.
궁지에 몰린 대통령은 마침내 은밀히 수도를 빠져 나가기로 작정하고 만다. 주제 사라마구의 <눈 뜬 자들의 도시> 는 작품 전체가 출구 없음에 대한, 우울한 우화집이다. <눈 먼 자들의 도시> <동굴> <도플갱어> 등 ‘인간의 조건 3부작’의 뒤를 잇는 작품이기도 하다. 도플갱어> 동굴> 눈> 눈>
소설은 정치가와 군부가 대중을 휘두르는 과정을 불쾌하리만치 근접 묘사, 인간과 권력을 풍자한 역설적 블랙 유머라는 평을 받기도 했다. 옮긴이 정영목씨는 “노벨문학상까지 타서 누릴 것은 다 누린 것처럼 보이는 작가가 새로이 내놓는 어두운 통찰은 신선하기까지 하다”고 지적한다.
줄바꾸기와 겹따옴표를 일절 배제한 채, 도저히 끝날 것 같지 않은 문장이 주는 묘한 흡인력도 그 ‘신선함’에 복무한다. 해냄, 1만1,000원.
■ '외상은 어림없지' '가시도치의 회고록'
부박하게 느껴질 정도의 속도감,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행위를 모두 글로 옮기기라도 하는 듯한 거침 없는 묘사, 판소리 사설을 방불케 하는 입심…. 마방쿠의 두 대표작 <외상은 어림없지> 와 <가시도치의 회고록> 이 한꺼번에 나왔다. 콩고 출신으로 프랑스 문단의 총아가 된 마방쿠의 작품이 한국에 소개되기는 처음이다. 가시도치의> 외상은>
<외상은 어림 없지> 는 콩고의 술집 ‘외상은 어림없지’의 터줏대감인 ‘깨진 술잔’이 현재 아프리카의 정치, 문화, 섹스 등을 화제로 뇌까리는 한 판 거창한 모노드라마다. 외상은>
자세히 보면 이 소설 역시 마침표가 하나도 없다. 이 소설은 결국 입심 좋은 사람이 끊임없이 내뱉는 하나의 기나긴 사설인 셈이다. 몇 시간이고 계속 청중을 붙들어 두던 판소리 사설과도 꼭 같다. 예를 들어 아프리카인 특유의 육체 관계를 묘사하는 대목 등 아프리카 버전의 너름새와 발림 앞에 독자는 설득, 아니 압도당한다.
<가시도치…> 는 속편격 작품이다. 사람은 짐승을 분신으로 달고 산다는 아프리카 설화를 바탕에 깔고 인간 사회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세진 옮김. 랜덤하우스코리아, 각권 9,000원. 가시도치…>
우울한 사유의 흔적(<눈 뜬 자들의 도시> )과 날렵하게 치고 빠지는( <외상은 어림없지> 등) 이야기가 공교롭게도 서로 흡사한 서술 양식에서 만나, 독특한 풍경을 일궈낸다. 외상은> 눈>
장병욱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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