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 미8군 소속 B(23) 병장은 5일 오후 9시20분께 서울 강남구 청담동 한 주점 화장실에서 사복차림의 여성 경찰관 A(29)씨를 주먹으로 때린 뒤 성폭행하려 했다. 당시 A씨는 근무를 마치고 친구를 만나러 온 길이었다.
같은 부대 동료 F(21) 일병은 B 병장이 범행하는 사이 화장실 문을 걸어 잠그고 망을 봤다. 다행히 A씨는 비명을 듣고 달려온 건물 경비원이 문을 따고 들어가 상황을 목격한 뒤 경찰에 신고한 덕분에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성폭행을 포기하고 달아나던 B 병장 일행은 100m 가량 떨어진 인근 아파트 공사현장 앞에서 출동한 경찰에 붙잡혔다.
조사결과 이들은 이날 오후 6시께도 청담동 골목길에서 주부 C(37)씨의 엉덩이를 만지다 성추행 혐의로 체포돼 인근지구대에서 2시간여 동안 조사를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아 풀려나자 또다시 이 같은 범행을 저질렀다.
경찰에서 B 병장 등은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 등을 들먹이며 조사를 완강히 거부하다 미국측 관계자들이 도착한 6일 오전에야 조사에 응했다. 경찰은 조사를 마치는 대로 구속영장 신청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나 신병은 미측에 인계하기로 했다.
미군 성범죄의 심각성은 수면 위로 떠오른 지 오래다. 1월에는 서울 마포의 한 골목길에서 술에 취한 주한 미군이 67세 할머니를 성폭행했다 법원에서 실형을 선고 받았고, 지난해 10월에는 경기 동두천 일대를 무대로 상습적으로 성폭행을 일삼은 19세 미군 병사가 경찰에 붙잡혔다. 같은 달 서울 용산의 한 이발소에서도 주한 미군이 여성 종업원을 성폭행하려다 미수에 그쳤다.
SOFA에 따르면 주한 미군의 공무 외 범행에 대해 한국이 1차 형사재판권을 갖고 있다. 또 ‘살인’ ‘죄질이 나쁜 강간’ 등 흉악 범죄의 경우 경찰이 현행범으로 체포해 구속 사유가 발생하면 구금 상태로 수사를 계속할 수 있다. 그러나 ‘죄질이 나쁘다’는 표현에서 보듯이 모호한 규정 때문에 미국의 동의가 없다면 신병을 넘겨줄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서울경찰청 관계자는 “나이든 할머니를 구타하고 3번에 걸쳐 성폭행한 마포 사건처럼 누가 봐도 죄질이 좋지 않은 극소수를 제외하면 필요 시에만 신병 인도 요청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이삭 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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