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린 그루웰 지음ㆍ김태훈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발행ㆍ536쪽ㆍ1만1,000원
여기 미국 캘리포니아 윌슨고등학교 학생들이 쓴 142개의 릴레이 일기가 있다.
신고식으로 오줌 세례까지 받아가며 잘 나가는 여학생 모임에 들어가려는 아이, 단지 뚱뚱하기 때문에 통학버스에서 집단구타 당한 아이, 마약에 중독된 아이, 모범생 딱지를 떼려고 쇼핑몰에서 도둑질 하다 걸린 아이, 집세를 못내 거리로 쫓겨나 학교를 그만두려는 아이…
이 책은 불량 학생의 집합소인 203호 교실 아이들에게 긍정적인 생각을 불어넣어 준 에린 그루웰이라는 교사와 문제아로 낙인 찍힌 고교생들의 일기다. 차별과 절망, 패배를 숙명처럼 받아 들이는 아이들에게 교과서를 접고 관용을 가르친 신참내기 교사는 문학과 글쓰기, 그리고 생생한 체험으로 아이들의 마음을 연다.
인종차별과 패싸움이 끊이지 않고 마약과 갱들의 총격전으로 거리가 전쟁터나 마찬가지였던 살벌한 사회에서 낙오자로 취급 당하던 아이들이 변해가는 과정을 생생한 육성으로 담아 냈다. 보스니아 내전의 생존자로 ‘현대판 안네 프랑크’로 불리는 즐라타 필리포비치와의 만남, 멀쩡하게 보이던 동급생이 일곱 살 여자아이를 강간하고 살해해 학교가 뒤집어졌던 일 등 차별과 폭력을 아이들의 눈으로 평가하고 반성한다.
진솔한 감정을 나누며 함께 배우고 ‘위험한 학생’이나 열등생 같은 딱지를 과거로 만든 아이들은 대부분 대학에 진학했고, 커뮤니티를 만들어 미국 전역에 ‘자유의 글쓰기’ 운동을 퍼뜨렸다. 현실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긍정적인 생각을 얻어낸 것이 마침내 기적을 만든 것이다.
마약에 빠진 문제아 소녀의 일기는 말썽을 일으키는 청소년을 보듬고 믿어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값진 일인지 말해 준다. ‘내게는 아직 더 나은 쪽으로 변할 기회가 남아 있다. 나는 그런 기회를 준 천사를 내게 보내주신 하나님께 감사 드린다. 사람들은 내가 마약 중독자나 미혼모 혹은 퇴학생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게는 아직 그들이 틀렸다는 걸 증명할 기회가 남아 있다.’
채지은기자 c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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