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용 발언, 외교용 발언이 따로 있는 것일까.
정부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타결의 조건으로 미국산 뼈 포함 쇠고기의 수입 재개를 미국 측에 약속했는지를 두고 양국간 설전이 가열되고 있다.
미국은 한국이 뼈 있는 쇠고기를 수입하지 않을 경우 협정문의 미 의회 통과가 어려울 뿐 아니라 행정부에서도 서명을 하지 않을 수 있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숀 스파이서 미 무역대표부(USTR) 대변인은 5일 USTR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쇠고기에 대한 명백한 통로가 마련되지 않을 경우 협정에 서명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앞서 카란 바티아 USTR 부대표도 “광우병 문제가 FTA 협상틀 밖에서 논의되고 있지만 노무현 대통령도 국제적인 기준을 존중하겠다고 시사한 바 있다”며 “한국이 쇠고기 시장을 완전 재개방하지 않으면 의회에서 비준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한국 측에 분명히 통보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박홍수 농림부 장관은 노무현 대통령의 ‘구두 약속’ 발언에 대해 ‘원칙적인 수준’이라며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있다.
박 장관은 4일 국회 농림해양수산위 전체 회의에 참석, 노 대통령의 ‘합리적 쇠고기 개방’ 발언에 대해 “대통령의 말에 따라 협상 전략이 바뀌는 것이 아니며, 합리적으로 노력한다는 말은 정상 간에 얼마든지 할 수 있다”면서 “미국이 국제수역사무국(OIE)의 등급 판정을 받으면 쇠고기는 다시 협상하는 것이고, 이에 따라 수입이 결정될 것”이라며 기존 원칙론을 재확인했다. 박 장관의 발언은 듣기에 따라서는 협상 결과에 따라 수입을 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권오규 경제부총리의 발언도 명확치 않다. 권 부총리는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5월20일께 OIE가 결과를 발표하면 수입 검역과 관련된 절차를 신속하게 제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어 가진 기자들과의 오찬 자리에서는 “OIE 권고사항은 나라마다 안받아 들일 수 있다”며 “그럴 경우 증거를 제출해야 하며, 그것은 검역 당국이 알아서 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광우병 감염 위험부위로 분류돼 수입이 금지된 미국 쇠고기의 뼈를 다시 수입해도 되는지에 대해 판단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국립수의과학검역원에 있다는 것이다.
국립수의과학검역원은 지금까지 미 쇠고기 뼈의 안전성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미국 요구에 따라 수 차례 열린 쇠고기 위생검역 기술협의에서도 뼈의 안전성을 놓고 미국측과 끝까지 대치했다.
문제는 수의과학검역원이 대통령까지 나선 ‘압박 상황’에서 과학적 근거에만 의지한 채 끝까지 소신을 펼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뼈 수입 불가 입장을 고수할 경우 한미 FTA의 판을 깰 수 있다는 부담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박 장관 등이 원칙론적인 입장을 펴고 있지만, 사실상 미국산 뼈 포함 쇠고기의 전면 개방 수순으로 가는 것은 불가피하다는 분석이 힘을 얻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다. 박 장관의 발언은 농심(農心) 달래기용이라는 것이다.
이진희 기자 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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