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FTA 체결로 뜨거웠던 한 주, 패션계에서 전해진 두가지 소식이 관심을 끌었다.
하나는 ㈜새영세계가 운영하는 생활한복업체 씨실과날실이 한국 웨딩드레스 브랜드를 출시한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국내 패션기업 빅3중 하나인 LG패션이 이탈리아 럭셔리 브랜드들을 직수입해 판매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FTA 타결 직후라서 일까. 이 소식들은 무한 개방시대를 맞는 한국패션의 고민을 한 데 노출시키는 것 같았다.
LG패션은 일경(구 태창)이 국내 유통권을 갖고있던 이탈리아 럭셔리 브랜드 안나 몰리나리와 블루마린, 블루걸 등 3대 브랜드의 수입판매권을 인수했다고 4일 밝혔다.
이로써 패션기업 빅3중 유일하게 직수입 여성복이 없었던(영국 브랜드인 닥스는 라이선스로 전개한다) LG패션도 해외 럭셔리 브랜드 유통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셈이다. 이 회사 관계자는 “여성복 사업 강화를 통해 패션전문 기업으로서 입지를 확고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지만 속내는 갈수록 확대되는 국내 럭셔리 시장을 겨냥한 것이다.
씨실과날실은 한국웨딩드레스 브랜드 ‘씨실(CISIL)’ 출시에 앞서 지난달 29일 서울시내 한 호텔에서 런칭 기념 패션쇼를 열었다. 한복이 아닌 한국적 모티브를 살린 웨딩드레스 브랜드이다. 서양식 웨딩드레스 패턴을 기본으로 하면서 조선시대 궁중 당의나 백제 왕관의 금식과 길상문양 등 우리 문화 속의 아름다운 디테일을 가미해 해외 드레스 시장에 진출하겠다는 야심이 담겼다.
이 회사 이동희 대표는 “베라 왕 드레스가 예비 신부들의 로망이 된 시대에 살면서 한복의 평면패턴을 고집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라고 말했다. 이 브랜드는 올 가을 미국 라스베가스 매직쇼를 통해 미국 드레스 시장에 선을 보인다.
두 업체의 행보에 주목하는 것은 패션산업의 국가간 경계가 허물어지는 시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생존을 향한 해법이 퍽 다르기 때문이다.
LG패션의 브랜드 직수입은 제조업에서 유통업으로 서서히 무게중심을 옮기고 있는 한국 패션기업들의 현실을 보여준다. 패션소비의 양극화가 가속되고 브랜드 가치와 디자인 파워에 관한한 해외 유명브랜드를 넘어서기 어렵다는 판단이 깔렸음 직 하다.
그러나 직수입 판매권 인수는 그야말로 유통수익을 취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비슷한 고민에 빠졌던 일본 기업들이 지분을 사들임으로써 그 브랜드의 실질적 주인이 된 것과는 맥이 다르다.
반대로 씨실과날실은 우리 문화의 특수성을 디자인 컨셉트로 잡아 해외에서 브랜드 파워를 일궈 보겠다고 한다. 톡톡 튀는 개성을 중시하는 국내 신세대들은 물론 파티문화와 드레스 시장이 큰 미국에서도 한류 특유의 이국적인 멋을 전면에 부각시킨다면 승산이 있다고 설명이다.
대기업은 풍부한 자본력을 앞세워 유통으로 살 길을 마련하겠다 한다. 규모가 훨씬 작은 중소기업은 그래도 살길은 독특한 디자인을 내세운 브랜드 육성이라고 말한다.
어차피 디자인창의력은 대기업의 몫이 아니었다고 말한다면 할 말 없다. 그러나 고가 시장은 해외 럭셔리 브랜드에 내주고, 중저가 시장 마저 값싼 중국산이나 해외 패스트 패션 브랜드에 잠식 당하고 있는 상황에서 다소 허황한 ‘세계 최초’라는 수식이 붙었다 할 지라도 브랜드 농사 한번 열심히 지어보겠다는 중소업체에 박수를 보태고 싶은 것이 솔직한 속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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