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대비하면 길은 있습니다.”
한ㆍ칠레 FTA가 타결된 2002년 10월. 전국 최대 포도 산지인 충북 영동군 포도재배 농가들은 땅이 꺼져라 긴 한숨을 쉬었다. 값 싼 칠레산 포도에 직격탄을 맞을 것이 불 보듯 뻔했기 때문이다.
국회 비준 과정에서 성난 농심은 하늘을 찌를 듯 했고, 폐업하겠다는 농가가 부지기수였다.
그러나 협정이 발효(2004년 4월)된 지 3년이 흐른 지금 영동지역 포도 생산량은 FTA 이전보다 오히려 늘었고, 가구당 소득도 더 높아졌다. 이제 “포도 농사를 접겠다”고 울부짖는 농가는 없다.
4일 영동군에 따르면 군내 포도 생산량은 2003년 4만1,477톤(4,287농가, 2,253ha)에서 지난해에는 4만4,750톤(4,253농가, 2,235ha)으로 3,200여톤 늘었다.
이 기간 총 수익은 874억원에서 1,006억으로 15%, 농가당 소득은 2,038만원에서 2,400만원으로 17%나 증가했다. 영동군청 손용우 포도담당은 “포도 주산국인 칠레와의 FTA 체결로 포도농가가 큰 타격을 입을 것이란 예상과 달리 농가수, 재배면적에 큰 변동이 없고 생산량, 소득은 꾸준히 늘고 있다”며 “요즘에는 폐업보상 지원금을 받으려고 폐업을 신청하는 농가도 거의 없다”고 말했다.
이곳 포도 농가들이 위기를 헤쳐갈 수 있었던 것은 상품 다각화 등 영동포도의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해 꾸준히 노력했기 때문이다.
농가들은 가공 산업에 뛰어들어 국산 포도주 ‘샤토마니’를 개발했다. 첫 토종 포도주는 소비자들의 입맛을 사로잡아 출시부터 돌풍을 일으켰다.
이 포도주 생산업체 ‘와인코리아’는 포도 농가가 주인인 농민주 회사. 농민 520여명이 소액주주이고, 영동군도 군비를 출자했다. 매출은 2005년 25억6,000만원에서 지난해 42억7,200만원으로 급증했다. 회사는 올해 매출 목표를 작년의 2배 수준인 80억원대로 잡고 있다.
포도 산업화를 위한 전략기구인 ‘영동포도 클러스터’도 주목 받고 있다. 영동군과 포도 영농법인, 영동대 등이 공동 참여한 이 기구는 ‘메이빌’이란 공동 브랜드를 개발한데 이어 농민 2,500명이 주주로 참여하는 ‘영동포도유통판매’를 설립, 포도 유통시장에 직접 뛰어들었다.
또 포도과자, 포도테마음식 등 기능성 신제품 개발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영동포도 클러스터는 지난해 10월 농림부가 주관한 지역농업클러스터 평가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농가들도 품질을 높이기 위해 뛰고 있다. 3,000여평에 걸쳐 포도 농사를 짓는 박삼수(57ㆍ영동군 황간면 남성리)씨는 “저가 외국산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일단 품질에서 월등히 앞서야 한다”며 “농가들이 친환경, 기능성 포도 재배에 힘을 쏟고 있어 한미FTA 파고도 넘길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영동=한덕동 기자 dd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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