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경기 오산시 오산IC 부근 E아파트 단지. 2,300여 가구가 6월 입주예정으로 있어 마무리공사가 한창이다. 이곳은 10년 전만해도 C섬유회사의 생산라인이 불철주야 가동하던 곳이다. 하지만 이 회사는 90년대 말 지방으로 이전했고 땅은 몇 년간 공터로 남아 있다 결국 아파트 부지로 변하고 말았다.
수원시내 B공장은 인근 아파트 주민과 시의 요구로 이전계획을 짜고 있다. 주민들은 주거지 한복판에 공장이 있어 조망이 나쁘다며 이전을 요구하고 있고 수원시 역시 도시계획에 걸림돌이 된다며 시 외곽지역으로 이전을 촉구하고 있다. 이 부지가 상업용지로 바뀌면 주상복합아파트 등이 들어설 전망이다.
떠나면 되는 기업들은 오히려 잘 됐다는 표정이다. 하지만 시장 접근성, 물류비, 계열사와의 연관 관계상 떠나지 못하는 기업들의 노력은 눈물겹다.
경기 서부의 C공장은 수출물량을 대기 위해 무허가로 공장을 증설해 가동하고 있다. 공장 내 증설부지가 있음에도 규제에 걸려 증설하지 못하자 과태료를 물면서까지 무허가 공장을 가동하고 있다.
경기 중부의 D공장은 좀더 교묘한 수법을 동원했다. 시장변화에 맞춰 신제품을 개발했으나 라인증설이 불가능하자 기존 공장 한 동을 멸실 신고하고 그 만큼을 새로 짓는 것으로 허가 받아 라인을 증설했다. 하지만 기존공장을 그대로 쓰고 있음은 물론이다.
수도권에 공장입지를 막는 수도권정비계획법과 산업집적활성화 및 공장설립에 관한 법률이 빚어낸 풍경이다. 물론 법안의 취지는 타당하지만 ‘한번 만들어지면 예외를 인정치 않는 속성을 지닌’ 규제의 역효과가 상상외로 심각하다는 것이다.
이 같은 규제로 지난해 경기도내 기업들이 보류한 투자금액만 무려 55조6,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신규고용추정규모만 3만6,000명이다. 이들 기업은 지방으로 이전하는 것보다 투자를 보류하는 편이 낫다고 판단하고 있다.
경기도 관계자는 “문제는 기업들이 투자를 보류했다 나중에 점차 포기한다는 것”이라면서 “불황이 이어지면서 일부 기업들은 공장용지를 아파트부지나 상업용지로 팔아 현금화하려는 유혹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1992∼2000년 경기도를 떠난 20개 기업용지 중 16개가 아파트 부지로 바뀌었다. 경기도는 이후 공장부지를 택지로 용도변경하는 것을 조례로 막았지만 지역에 따라 주상복합아파트를 짓는 것은 여전히 유효하다. 군포 E공장의 경우 택지로 전환이 안되자 매입자가 소송을 제기하는 등 최근에도 공장부지에 대한 용도전환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원 김선빈(42)연구원은 “수도권의 공장입지 규제는 과밀해소와 균형발전이라는 좋은 의도로 만들어졌지만 실상은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해외나 지방으로 이전한 기업의 상당수가 규제때문이라는 주장은 과장됐으며 근거도 희박하다”면서 “오히려 기업들이 과밀에 따른 비용증가로 이전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반박하고 있다.
이범구기자 gogum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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