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타결로 동북아 지역의 경제 주도권을 잡기 위한 한ㆍ중ㆍ일 3국간 경쟁이 가열되고 있다. 한미 FTA는 동북아의 정치ㆍ경제 질서를 뒤흔들 만큼 파괴력이 크기 때문이다.
한국은 한미 FTA를 지렛대로 중국과 일본에 끼여 옴짝달싹 못하는 ‘넛크래커 상황(호두 까는 집게 속에 놓여있는 상태)’을 돌파하겠다는 전략이다.
나아가 유럽연합(EU), 중국, 호주 등과의 동시다발적 FTA를 추진, 교역과 투자에 관한 한 ‘한국을 통하도록’ 하는 동북아의 대외창구 역할을 하겠다는 구상이다.
반면 한미 FTA의 타결로 동아시아를 중화경제권으로 통합하려던 전략에 차질을 빚게 된 중국과 미국 시장을 한국에 내주게 된 일본은 조급해졌다.
이에 따라 그 동안 한국과의 FTA에 소극적이던 중국과 일본 내에서는 기존의 보수적이던 FTA 전략을 수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고지 선점한 한국
한ㆍ중ㆍ일 3국 중에서 한국이 가장 먼저 미국과 FTA를 체결했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중국의 가격 경쟁력과 일본의 기술 경쟁력에 치인 한국이 한편으로는 FTA의 무관세 프리미엄으로 가격 경쟁력의 약점을 보완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미국의 기술 노하우를 전수 받아 기술 경쟁력의 약점을 메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중국으로만 향하던 미국 등 선진국의 직접투자의 물길을 한국으로 돌릴 수 있고, 나아가 일본과 중국의 기업이 한국에 투자하는 효과도 유발할 수 있다. 중ㆍ일 기업이 한국을 통해 미국과 교역을 하는 허브 역할을 할 수 있는 셈이다.
한국은 향후 동시다발적 FTA를 통해 ‘동북아 창구’ 역할을 더 강화한다는 전략이다. 유럽연합(EU)과는 5월초 협상을 개시하기로 한 상태다.
중국과는 지난달 1차 산ㆍ관1ㆍ학 공동연구 회의를 개최하는 등 사전 정지작업을 진행중이다. 중국과의 FTA의 경우 자동차 철강 등 제조업은 혜택이 크지만, 농산물은 타격이 불가피하다. 때문에 정부는 산업구조의 궁합을 고려해 EU와 우선적으로 협상을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한국은 또 캐나다, 멕시코, 인도 등과도 FTA 사전 절차를 진행중이다. 정인교 인하대 교수는 “동시다발적 FTA는 한국 시장내에서 선진 기업들간 경쟁을 촉진시키는 대신, 한국은 세계 시장을 동시에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EU와 FTA를 맺을 경우 한국은 양 시장을 동시에 얻을 수 있는 셈이다.
다급해진 중국
한미 FTA 타결로 중국은 다급해 졌다. 무엇보다 동북아 경제질서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약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대(對) 아시아 전략은 한마디로 ‘위안 블럭’의 건설이었다.
동아시아를 중화경제권으로 통합시켜 나간다는 전략이었다.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과의 FTA를 한ㆍ중ㆍ일 가운데 중국이 가장 먼저 체결한 것도, 중국이 한중간 FTA 보다 한ㆍ중ㆍ일 3국간 FTA를 계속 제기해온 것도 이 때문이다.
여기에는 동아시아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을 감소시키기 위한 정치적 계산도 작용했다.
이 때문에 한미 FTA는 중국이 구상하는 ‘큰 그림’에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게 됐다. 한미 FTA가 타결되자 중국이 한중 FTA에 대한 강한 의지를 다시 보이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박번순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한미간 경제동맹으로 한국에 대한 중국의 구애가 더 거세질 수밖에 없다”며 “벌써 중국이 농산물 부문 쟁점은 조율할 수 있다며 유화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긴장하는 일본
한미 FTA 타결에 가장 위기감을 느끼고 있는 나라는 일본이다. 하타케야마 노보루 일본 국제경제교류재단 회장은 최근 아사히 신문 기고를 통해 “한국 제품이 미국에 무관세로 들어가고, 일본 제품은 평균 4%의 관세를 지불하게 된다”며 “한국으로 공장을 이전하는 일본기업이 생겨 일본 경제에 공동화가 초래될 것”이라고 경계했다.
한미 FTA로 미국산 일본 차의 한국 수출이 늘어날 수 있지만, 대미 수출에서는 일본이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현재 미국 시장에서 한국산 승용차는 일본 차에 비해 2~3%의 가격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
무관세로 인한 추가적인 2.5%는 판매 증대에 효과를 발휘할 수 밖에 없다.
나아가 한국이 부품소재 수입선을 일본에서 미국으로 대체한다면, 한국에 매년 200억 달러 이상의 흑자를 내고 있는 일본으로서는 긴장될 수밖에 없다.
시오자키 야스히사 관방장관도 지난 3일 “한일 FTA에 대해 언제라도 응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일본은 2003년부터 6차례에 걸쳐 한국과 FTA 협상을 진행해 왔지만 농산물 시장 개방 확대를 희망하는 한국측 요구를 일본이 거부해 중단된 상태다.
유병률 기자 bry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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