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뼈를 포함한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을 미국에 확약한 것일까. 아니면 원칙론만 언급하며 시간 벌기에 나선 것일까.
2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타결 직후 정부가 미국에 뼈를 포함한 쇠고기의 수입 재개를 약속했는지에 대한 노무현 대통령과 박홍수 농림부 장관의 발언에 미묘한 차이가 나 미국산 쇠고기 수입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농림부는 원칙적으로 5월 말 국제수역사무국(OIE)이 미국을 광우병을 통제할 수 있는 국가로 판정하면 이후 뼈 포함 쇠고기의 수입 가능성을 평가한다는 입장이지만, 사실상 수입을 확정지어 놓고 시기만 저울질 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대통령과 장관의 엇갈리는 발언
노 대통령은 2일 대국민 담화에서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전화 통화를 통해 OIE의 권고를 존중해 (쇠고기를) 합리적인 수준으로 개방하겠다는 의향을 갖고 있다는 점, 그리고 합의에 따르는 절차를 합리적인 기간 안에 마무리할 것이라는 점을 구두로 약속했다”고 밝혔다.
이는 앞서 박홍수 장관이 한미 FTA 타결 직후 가진 기자 간담회에서 “구두 약속이나 이면 합의는 없었다”고 발언한 것과 상반되는 것이다.
박 장관은 “미 쇠고기 수입과 관련한 위생 문제는 한미 FTA 협상과 별도로 접근한다고 계속 밝혀왔다”면서 “5월 OIE의 판정 결과가 나온 뒤 미국이 우리에게 위생조건 개정을 정식 요청하면 양자간 기준 개정을 통해 수입할 수 있다는 원칙이 서 있다”고 말했다.
물론 양국 정상이 전화 회담을 통해 확정한 사실을 장관이 몰라서 한 발언일 수도 있지만, 노 대통령의 ‘구두 약속’발언도 ‘수입 재개 확약’이라고 단정짓기에는 표현이 애매하다.
‘합리적인 수준의 개방’ ‘합리적인 기간 안에’ 등 향후 정부 의지에 따라 얼마든지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는 뉘앙스를 풍기고 있기 때문이다.
7~8월 수입재개 유력
농림부는 대통령 발언이 알려진 뒤 일정 부분 뼈 포함 쇠고기의 수입재개는 불가피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농림부 관계자는 3일 “5월 이후 새로운 판정 과정을 거쳐 현재 수입이 금지된 부위에 대한 수입위생조건을 개정할 것”이라며 “부위별로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일정 부분 수입 확대는 불가피한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미 전세계 116개국이 미국산 쇠고기를 다시 수입해 먹고 있다”며 “한국만 유일하게 미국산 쇠고기를 들이지 않고 있다”고까지 말했다.
현재로서는 OIE의 판정결과가 미국에게 불리하게 나올 가능성은 거의 없다. OIE는 이미 지난 3월 미국을 광우병 통제가 가능한 국가로 예비 판정했고, 5월말 총회는 이런 예비판정을 최종 확정해 발표하는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5월 말 OIE 총회가 끝나면 미국과 바로 협의에 들어가 뼈까지 수입할 수 있도록 수입위생조건 개정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이후 이르면 7~8월에 미국산 뼈 포함 쇠고기가 다시 한국에 들어올 것으로 보인다.
OIE 기준 및 안전성 논란 지속
미국이 뼈 포함 쇠고기 수출에 집착하는 이유는 한국 시장의 갈비 수요 때문이다. 미국은 수입 금지 전 한국에 연간 1조원 가량의 쇠고기를 수출했다. 이중 68%(2003년 기준)가 뼈를 포함한 LA갈비가 차지했다.
그러나 한국은 지난해 수입 재개 결정을 내리면서 뼈를 광우병에 감염될 위험이 있는 부위로 분류, 수입을 허용하지 않았고 이 때문에 미국과 마찰을 빚어왔다.
그러나 미 쇠고기의 안전성 논란은 여전한 상태다. 광우병은 반추동물 부위를 갈아 소의 사료로 사용하면서 발생했는데, 미국은 아직 수령 30개월 이상 된 소의 뇌와 척수만 동물 사료에서 제외하도록 정하고 있어 광우병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영국의 경우 1990년 6개월 이상 된 소의 뇌, 척수, 비장, 창자, 편도 등을 동물사료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조치를 취해 미국보다 더 강한 규제를 두고 있지만 이후에도 광우병이 발생했다.
OIE의 기준을 반드시 따라야 하는 지도 논란거리다. 송기호 변호사(통상전문)는 “세계무역기구(WTO) 위생 검역 협정은 ‘OIE 기준을 이유로 회원국이 자국민의 건강과 생명의 적정 보호 수준을 변경할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고 명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송 변호사에 따르면 WTO는 위생검역 판례를 통해서도 ‘OIE 기준이 원칙이며, 나머지 더 엄격한 위생조건은 예외적’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더구나 OIE 판정을 자국에게 유리하게 이끌기 위해 미국이 전면적인 로비에 나섰다는 주장도 오래 전부터 제기돼 OIE 결정이 내려진다 해도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 논란은 지속될 전망이다.
이진희 기자 river@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