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장벽에 일본의 자존심이 무너졌다.
일본 경제와 기술의 상징인 소니는 2001년 네덜란드 정부로부터 플레이스테이션 게임기 수출을 금지 당하면서 국제적 망신을 샀다. 게임기에 기준 이상의 카드뮴이 함유된 게 화근이었다. 소니는 결국 130억엔(약 1,040억원) 매출 손실과 60억엔(약 480억원)의 영업이익 손실을 입었다. 부품 교환 등 관리시스템 구축비용으로 무려 1,000억원을 쏟아 부었다.
네덜란드는 1999년 카드뮴 규제법령을 정해 전자제품에 일정량 이상의 카드뮴이 함유되면 수입을 제한한다. 이 법을 기초로 유럽연합(EU)은 지난해 7월 납(Pb), 카드뮴(Cd), 6가크롬(Cr+6) 등 6개 유해물질을 함유한 제품은 반입을 금지한 유해물질 사용제한 지침(RoHS)을 정해 시행중이다.
소니는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 라인을 변경했으나 수출 금지 파문이 계속되자 지난해 7월 자사 홈페이지를 통해 “당사 제품이 EU의 RoHS 지침을 위반해 벌금을 내거나 제품을 파기했다는 사실이 유포되고 있으나 사실이 아니다. RoHS 지침에 따라 엄격한 화학물질관리시스템을 구축했다”고 해명했다.
소니뿐 아니라 컴팩은 99년 PC에서 할로겐 난연제가 검출돼 스웨덴 조달청과의 계약이 파기됐다. 다이슨은 청소기에서 검출된 카드뮴 때문에 독일과 스위스로부터 수입 금지조치 당했다. 우리 기업도 언제 이 같은 위기를 맞을지 모른다.
●또 다른 환경장벽 REACH
EU의 환경 무역장벽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EU 25개 회원국 환경부 장관들은 지난해 말 또 다른 환경규제인 신화학물질관리제도(REACH)를 승인했다. 화학물질의 안전성을 입증하지 못한 제품은 유통될 수 없도록 한 법이다. 이 장벽을 뛰어넘지 못하면 우리 기업의 수출길은 막힌다.
REACH는 EU 회원국의 40여개 화학물질 관련 법령을 통합한 것으로 올 6월 각 회원국에서 공포된 후 2008년 12월 1일 본격 시행된다. 제도 도입의 명분은 유해화학물질로 환경이 파괴되고 인체 피해도 위험수위를 넘어 대책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제도 적용 시 역내 기업과 역외 기업을 차별할 수 있어 강력한 무역장벽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이 제도에 따라 EU에 수출하는 역외 기업과 유럽 내에서 제품을 만드는 역내 기업은 2008년 6~11월 제품에 포함된 화학물질의 성분과 함량을 EU 화학물질국에 의무적으로 사전 등록해야 한다. 제품에 포함된 화학물질이 연간 1,000톤 이상일 경우 사전등록 후 3년 6개월, 100톤 이상일 경우 사전등록 후 6년 이내에 인체나 환경에 유해하지 않다는 과학적 분석내용을 첨부해 본등록을 하게 된다. 2008년 11월까지 사전등록을 하지 못하면 제품 유통은 전면 금지된다. 2008년 12월 이후 등록할 경우 최종 허가까지 수개월~수년이 소요될 전망이다.
●대응책 비상
지난해(11월 말 기준) 국내 기업은 EU 국가에 351억 유로(약 44조원) 어치의 제품을 팔았다. 앞으로 제품을 수출하기 위해선 함유제품을 등록하거나 유해하지 않은 소재로 바꿔야 한다.
화학물질 분석과 등록과정에서도 돈이 든다. EU는 화학물질 등록비용을 건당 최소 수천만 원에서 최대 수십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우리나라와 화학산업 규모가 비슷한 영국은 등록비용이 약 9,300억원에 달할 전망이다. 우리나라 환경부는 최소 1조원, 최대 2조원 가량 소요될 것으로 내다봤다.
상황이 이렇게 심각한데도 일부 대기업을 제외하곤 국내 거의 모든 기업이 REACH의 개념조차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환경부가 최근 화학물질과 완제품 제조ㆍ수출업체 3,000곳을 대상으로 이 제도에 관한 설문지를 배포했으나 응답률이 4%(127개 업체)에 그쳤다. 응답자 가운데 REACH의 개념을 모르는 경우도 30%에 달하는 등 대부분의 국내 기업이 REACH에 대해 관심조차 두지 않고 있다.
관심을 갖고 대응하려 해도 화학물질 성분 및 함유량 분석 인프라가 부족한 것도 문제다. 성분을 시험ㆍ분석하는 국내 기관은 8개밖에 없으며 생태독성 분야를 분석하는 기관은 단 2곳이다.
환경부는 올해 REACH 추진기획단을 설치해 대응방안을 연구 중이다. 환경부, 산업자원부, 노동부 등은 산업계를 대상으로 관련 세미나를 개최하고 맞춤식 원스톱 서비스 체계를 구축, 국내 기업을 지원하고 있다.
이현순 현대자동차 사장은 “자동차에 포함된 화학물질을 등록하지 않으면 앞으로 EU시장에서 판매가 금지된다”며 “현대차는 대응팀을 구성, 대책을 마련하고 있으나 중소기업의 경우 비용부담 때문에 수출을 포기하려는 사태까지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송두영기자 dysong@hk.co.kr
■ 환경칼럼/ 환경경영은 최첨단 경영학
경영학의 학문적 역사를 돌아보면 지난 100년 동안 외연이 확장되면서 그 중요성이 증가했다.
1900년대 초반 헨리 포드가 포드 자동차 회사를 시작할 때만 해도 최고경영자(CEO)의 역할은 근로자로부터 최대의 효과를 얻는 게 전부였다. 경영학의 초점은 생산관리였다. 제품을 한 개라도 더 만들어내는 것이 경영자의 보람이었다. 반면 근로자는 회사에서 부품만도 못한 대우를 받았고, 경영자 역시 이들에 대해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1914~18년의 1차대전을 겪으면서 유럽에서 시작된 인본주의가 세계에 전파됐다. 미국에서는 최초의 본격적 노조연합인 미국노동총동맹-산업별회의(AFL-CIO)가 설립되면서 경영자는 근로자를 중요한 경영의 대상으로 삼게 됐다. 그러나 공급보다 수요가 훨씬 큰 전통적 시장에서 경영자는 소비자에게 큰 관심을 가질 수 없었다.
2차대전 후 미국 시장은 새로운 질서가 형성됐다. 전쟁 기간 군수물자를 공급하던 미국 회사들은 공급능력을 크게 증가시킨 반면 소비자들은 근검생활에 익숙해졌다.
1950년대 미국에는 인류역사상 처음 공급이 수요를 초과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만들기만 한다고 팔리는 게 아니라는 것을 경영자는 깨닫게 됐다. 고객경영, 또는 마케팅이라는 새로운 영역이 경영학자의 과제로 떠오르면서 경영자는 기존의 생산관리, 인사관리 외에 마케팅을 새롭게 추가해야 했다.
20세기 후반은 경영학이 좀더 정교해지고 이론화한 시기다. 그러나 당시의 경영학은 매출액이나 이익과 같은 목표만을 맹목적으로 연구하는데 그쳤다. 기업이 사회적으로 더욱 큰 영향을 미치게 됐으나 기업의 행태는 여전히 탐욕적 모습을 벗어나지 못했다.
기업의 잘못된 관행에 사법적 잣대가 적용된 첫 사건은 엔론(Enron)의 회계부정이다. 2001년 발생한 이 사건은 매출액 기준으로 6위(미국 내)의 큰 회사라도 내부 경영이 투명하지 못하면 하루아침에 파산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주었다. 이 사건은 국내 경영자에게도 투명경영, 윤리경영의 중요성을 인식토록하고 적용하는 계기가 됐다.
경영학은 지난 100년간 생산관리 중심의 학문에서 인사관리, 마케팅, 윤리경영 분야로 발전했다. 이제 경영자에게 마지막 남은 가장 크고 중요한 분야는 환경이다.
우리 경영자들은 환경분야에 소극적이다. 환경재단과 같은 비정부기구(NGO)를 보면 기업 경쟁력의 발목을 잡는다고 지레 걱정 한다. 환경경영에 쓰는 돈은 비용에 불과하기 때문에 이를 최소한으로 줄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최근 환경경영에 대한 투자가 더 큰 이익을 가져온 사례가 속속 나타나고 있다. 환경운동을 함으로써 시장 점유율 60% 수준을 지속하고 있는 유한킴벌리는 물론 풀무원, 포스코 등은 적극적인 환경경영을 통해 매출액과 이윤을 극대화하고 있다.
이런 기업들이 더 많이 등장해 환경에 대한 투자를 통해 이익을 내는 방법이 이론으로 정립될 때가 올 것이다. 환경경영은 생산관리, 인사관리, 마케팅, 윤리경영과 같은 기존의 경영분야를 뛰어넘어, 최첨단의 경영학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조동성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 (한국학술단체총연합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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