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평론, 그것도 비판적인 정치평론을 자주 쓰다 보니 항의와 협박 등 여러 일을 겪게 된다. 특히 박정희와 김대중 전 대통령을 비판하는 경우 반응은 격렬하다.
낮은 목소리로 "내가 '사시미' 칼을 잘 갈아놓았는데 조만간 회를 쳐주겠다"는 전화 협박을 받기도 했다. 화가 난 독자가 내 차의 트렁크와 앞면에 칼로 쌍스러운 욕을 크게 새겨놓아 다시 도색을 해야 했던 경우도 있다.
이처럼 정치논평으로 산전수전 다 겪었지만 지난 주 '손호철의 정치논평'에 쓴 "손학규, 불출마 선언하라"는 칼럼을 둘러싼 작은 소동은 정말 화가 나면서, 언론의 보도윤리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 '손학규, 불출마선언하라'의 소동
'손호철의 정치논평'은 매주 월요일 나가기 때문에 일요일 아침에 원고를 보낸다. 그러나 지난 주는 금요일에 베이징에 회의가 있어 미리 원고를 보냈다. 그러면서 원고를 내가 속한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들에게 이메일로 보냈다.
과에서 4월에 대학부설 연구소로는 처음으로 선거와 여론조사를 전문으로 하는 현대 한국정치연구소를 개설하면서, 창립기념행사에 정계대표로 과에서 군무했던 손학규 전 지사에게 축사를 해달라고 초청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손 전 지사가 탈당을 한 것이다. 반장선거에 열심히 뛰다가 당선이 불가능하다고 전학을 가는 상식이하의 행동을 한 이상, 그에게 축사를 시키는 것은 부적합하다고 생각해 초청을 재고해 보자는 취지였다.
그런데 금요일 회의를 하고 있는데, 학과장이 베이징으로 전화를 했다. 동아일보에서 이메일 내용에 대해 취재전화가 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글은 3일 뒤 한국일보에 나갈 칼럼이며, 어떤 경우로 입수한 것이든 과 교수들에게 보낸 사적 이메일인 만큼 한국일보에 칼럼이 나가기 전에는 보도해서는 안 된다는 뜻을 동아일보에 전달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런데 토요일 아침에 연합뉴스 기자가 전화를 해왔다. 동아일보에 내가 과교수들에게 손 전 지사를 비판하는 이메일을 보냈다며 비판내용을 소개한 기사가 났는데, 어찌 됐느냐는 것이다.
아니 다른 신문도 아니고 동아일보 같이 유서 깊은 대 신문이 다른 신문에 날 칼럼을 미리 입수했다고 먼저 보도하다니, 내 귀를 의심했다. 그리고 이미 동아일보에 보도된 나의 글을 이틀 뒤 칼럼으로 실을 한국일보와 이를 읽은 독자들을 생각하니, 낯이 뜨겁고 분통이 터져 나왔다.
나는 언론과 표현의 자유는 거의 절대적인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는 매우 진보적인 입장을 갖고 있다. 그래서 내용적으로는 전혀 동의할 수 없지만, 노무현정부에 대한 무장저항을 사주한 조갑제씨를 친노세력이 국가보안법과 내란죄로 고발한 것에 대해 비판하는 글을 쓰기도 했다.
지적 재산권(copy right)에 대해서도 지적 산물은 재산권을 행사하기보다는 인류가 공유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카피레프트(copy left)이다.
그러나 이는 일단 글이 발표된 이후에 그런 것이고 내가 발표할 글, 그것도 경쟁업체인 다른 신문에 쓴 칼럼을 미리 입수했다고 나의 동의 없이 싣는다는 것은 언론의 자유나 카피레프트와는 전혀 다른 문제이다.
물론 언론이 보도경쟁을 하는 것은 이해가 된다. 그러나 특종도 특종 나름이지 남의 칼럼을 가지고 이처럼 최소한의 상도덕과 보도윤리를 헌신짝처럼 던져버리면서까지 특종을 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 남의 칼럼 낚아챈 일그러진 특종
이와 관련, 내가 항의를 하자 동아일보는 문제의 기사를 쓴 기자의 기자수첩형식을 통해 해명을 했다. 나의 이메일이 사적 통신이 아니라고 판단해 실었다는 해명이다. 이에 동의할 수 없지만 설사 동의한다 하더라도, 그 글이 한국일보에 게재할 칼럼이라는 사실을 알렸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미리 실은 행위는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손호철 서강대 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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