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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래부 칼럼] 하근찬 문학의 주인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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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래부 칼럼] 하근찬 문학의 주인공들

입력
2007.04.03 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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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일본 정부의 강제동원 부인은 작가 하근찬씨와 그의 문학을 떠올리게 한다. 1957년 <수난이대(受難二代)> 로 한국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그는 끈질기게 일제 말기 이후의 어두운 시대를 소설로 증언해온 문단의 원로다. 그 중에서도 역사에서 소외 당한 계층의 수난이라는 주제에 집요하게 매달려 왔다.

<수난이대> 에서는 일제의 징용으로 끌려가 한쪽 팔을 잃은 아버지가 6ㆍ25로 한 쪽 다리를 잃고 돌아오는 아들을 마중하는 장면을 극적으로 그리면서, 비극을 딛고 일어서는 부자의 의지를 보여준다.

대표작 <야호(夜壺)> 나 <산에 들에> 의 주인공들 역시 큰 이상을 품은 존재거나, 운명에 저항하는 매혹적 인물들은 아니다. 그들은 분노와 증오를 속으로 삭히는 용렬하리만큼 착한 농촌 출신들이며, 주어진 고난에 맞서 살아야 하는 보통의 인간상이다.

● 일제에 징용 간 보통 남녀들

<야호> 의 배경인 일제 말기는 일본인의 만행이 일상화한 반면, 국내 지도자들이 민족적으로 대거 변절하던 시기다. 아무 희망도 보이지 않는 가운데, 당시 대부분 농촌에 살던 조선인들에게 가해지는 일제의 징용이나 징병, 부역 등은 보편화해 있었다. <야호> 에서는 일제의 가혹한 수탈이 이렇게 그려진다.

'벼 공출은 말할 것도 없고, 보리 공출ㆍ밀 공출ㆍ감자 공출에다 심지어는 놋그릇 공출까지 하지 않았느냐. 그것뿐인가. 피마자 심기ㆍ관솔 따기ㆍ새끼 꼬기ㆍ가마니 짜기… 그리고 징용에 우리 두원이까지 내보내지 않았느냐 말이다. 그만하면 됐지, 무엇이 모자라서 이번에는 남의 딸까지 앗아 가느냐 말이다…'

주인공은 좋은 신랑 만나 시집가고 싶은 소박하고 처녀다운 꿈을 간직한 갑례다. 그는 장래를 약속한 애인을 징용으로 떠나보내고, 자신도 친구 분임과 함께 정신대로 끌려간다.

도중 '정신대는 일본군의 위안부'라는 말을 듣고 한밤중 깊은 안개를 이용해 간신히 탈출한다. 다시 정신대로 끌려가지 않기 위해 마음에 없던 이웃 마을 청년과 결혼하지만, 남편 역시 징병에 끌려가게 된다. 혹독한 수탈구조 속에 많은 식민지 젊은이들의 순정한 꿈은 파괴되어, 남자는 태평양전쟁의 총알받이가 되고 여자는 일본군의 성노예가 되는 운명을 맞는다.

하씨는 여러 주요 문학상도 받았고 '가장 정통적인 작가'로도 불린다. 그의 문단적 존재가 특히 각별한 것은 그가 일제강점기에 겪은 보통 사람들의 수난을 증언하는 거의 유일한 작가이기 때문이다.

부친이 초등학교 교장이었고 자신도 한때 교사였던 그는 모든 징병이나 징용, 부역 등은 시골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잘 안다고 한다. 그는 "시대를 증언하는 증인이 되고 싶다"고도 말했다.

지금 일본 정부는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서 한국ㆍ중국을 비롯한 미국 캐나다 독일 등의 의회나 언론과 무모하고 승산 없는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 국제적 비난 여론이 점점 거세지고 있는 가운데, 일본은 피해자를 모독하는 졸렬함을 일삼거나 일본 국내용의 거짓 발언을 거듭하고 있다.

그들은 오직 시간의 경과만 기다리는 듯하다. 진실을 밝히고 사과ㆍ보상하기보다 피해 당사자들이 하나 둘 세상을 떠남으로써, 증언할 사람이 모두 사라지기를 기다리는 모양이다.

● 거짓 밝혀줄 시대적 진실

광복 60년이 지난 지금도, 진부해진 문제를 양국이 깨끗이 청산하지 못하고 소모적 논란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 한심하고 불행하다. 일본은 우리에게 <수난3대> 를 강요하는 셈이다. 하씨 같은 작가가 한둘 더 있었어도, 지금처럼 터무니 없는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을 듯하다.

삶의 다양성을 끌어안기보다 정치적 주제에 치우쳐온 우리 문학의 편협성이 새삼 안쓰럽다. 하씨의 건강이 나빠 육성적 발언을 들을 수 없는 사정 또한 안타깝다. 그러나 역사에는 올바른 기록과 문학이 있다. 엄정한 문학에는 시대를 뛰어넘는 진실이 숨쉬고 있다.

박래부 논설위원실장 parkr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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