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컨버전스(기술융합)는 비단 기술에만 적용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취업 시장에서도 전공뿐만 아니라 새로운 영역까지 개척하는 다재 다능한 인재가 각광 받는 시대다. 하지만 경계를 뛰어넘는 것은 그리 호락호락한 일이 아니다. 새로운 영역에 대한 도전은 그 자체가 두려움이기 때문이다.
포스데이타의 엔지니어 윤치권(33) 대리. 그도 컴퓨터 네트워킹에 매료돼 전공인 경영학을 내팽개칠 때만 해도 ‘고생을 사서 한다’는 핀잔을 듣곤 했다. 하지만 그는 비전공의 한계를 뚫고 취업에 성공했을 뿐만 아니라 ‘정보기술(IT) 사법고시’라고 불리는 자격증까지 땄다. 경영학도에서 IT엔지니어로 변신에 성공한 윤 대리의 노하우를 들어본다.
컴맹에서 IT회사 취업까지
그는 컴맹이었다. 대학교 입학까지도 연필로 리포트를 작성할 정도로 컴퓨터와는 담을 쌓고 지냈다. 1998년 군대 제대 이후 홍익대 경영학과로 학교를 옮기면서 컴퓨터 자판을 처음 접했다. 물론 독수리 타법이었다.
2학년 때 교양과목으로 신청한 컴퓨터 네트워킹 수업은 운명과의 만남이었다. 수업을 들을 때마다 신세계를 발견한 냥 신기하고 설??? “컴퓨터 네트워킹은 정보의 도로를 뚫는 작업이었어요. 도로 한곳이 붕괴되거나 막히면 교통이 완전히 마비돼 정보망을 뚫어주지 않으면 고가의 컴퓨터들도 무용지물이 되는 거죠. 제가 정보의 고속도로를 뚫는다는 걸 상상만 해도 뿌듯했죠”
그는 학기 중에는 학과공부를 하고 방학 때는 스터디와 학업으로 IT 지식을 익혀 나가는 이중생활을 시작했다. 스터디 장소가 없어 몰래 대학교 교실에 들어갔다 쫓겨나는 수모도 수차례 당했다. 다만 불어나는 자격증이 유일한 위안이었다. 하지만 IT 중에서도 가장 어렵다는 네트워크 분야는 엄두도 내지 못했다. 주변에선 “다른 건 몰라도 네트워크는 전공자가 아니면 힘들다”며 기를 꺾었다.
그렇다고 중도포기는 안될 말이었다. 네트워크가 뭔진 모르지만 너무나 하고 싶다는 맘에 덜컥 학원수강을 신청했다. 수강생 100여 명중 비전공자는 단 한명뿐이었다. 장비가 워낙 고가인 까닭에 실습이 불가능해 책만 들여다봐야 하는 것도 고역이었다. 졸업은 다가오고 앞은 깜깜했다. 무작정 한 통신회사에 지원했지만 서류에서 떨어졌다. “비전공자가 올 수 있는 곳이 아니다”라는 인사담당자의 말은 가슴에 박혔다.
재차 맘을 가다듬고 포스데이타에 지원했다. 또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면접기회는 주어졌다. 전문지식과 실전 경험이 풍부한 전공자들과 경쟁하는 건 뻔한 결과처럼 보였다. 그가 어필할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 5개에 이르는 자격증으로 밀어 붙이는 것이었다. 결과는 합격이었다. “포스데이타가 포스코와 계열사의 시스템을 관리하는 IT회사란 걸 알고는 꼭 입사해야 겠다는 생각을 했죠. 임원진이 ‘뭐 하러 이렇게 자격증을 많이 땄냐’고 묻길래 ‘비전공자인데다 경험도 없지만 IT회사에서 일하고 싶어 준비했다’고 답했는데 그게 통했던 것 같아요”
열정과 노력으로 한계 넘어
윤 대리는 20여개의 컴퓨터 자격증을 가진 IT전문가다. 그의 명함에는 일명 I‘T 사법고시’라고 불리는 시스코사의 네트워크 자격증(CCIE R&S, SECURITY) 로고가 2개나 새겨져 있다.
국내에서는 두 개의 CCIE 자격증을 딴 사람이 손에 꼽을 정도여서 명함만 내밀면 고객들이 금방 실력을 알아챈다.
그가 컴맹에서 IT 전문가가 된 비결은 끊임없는 노력이었다. 윤 대리는 입사 이후에도 새벽까지 책과 씨름 했고, 주말에도 회사에 나와 실습을 하거나 학원수업을 들었다. 3년 동안 단 하루도 쉬지 않았다. 모두 비전공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열정은 고된 나날 속에서 그를 지탱해 준 버팀목이었다. 그의 좌우명은 ‘천재는 노력하는 사람을, 노력하는 사람은 일을 즐기는 사람을 이기지 못한다’다. “아무리 쉽든 일이라도 열정만 있다면 불가능은 없는 것 같아요. 열정을 가진 사람에게 전공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
그의 취업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회사의 인사 정책과도 무관하지 않다. 포스데이터는 IT 기업이지만 굳이 전공을 따지지 않는다. 그보다는 일에 대한 태도와 인성을 중요시 한다. 포스데이타 경영지원부의 김해성 이사보는 “IT 회사에 걸맞은 전공 능력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인성과 리더십, 태도 등을 더 중요시 여긴다”라며 “평소 꾸준히 지식을 쌓고 매사에 열정을 가지고 행동하는 사람이라면 전공은 중요하지 않다”고 귀띔했다.
안형영 기자 Promethe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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