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처럼 사람들이 땅과 집에 집착하는 곳이 또 있을까? 땅 위에 줄을 긋고 돈 주고 등기하면 그것이 천년만년 자기 것으로 남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손바닥만한 땅에 그렇게 엄청난 가격을 매길 수 있을까? 그만한 돈을 주고 산 땅이 꺼져버리거나 없어져 버릴 수도 있다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으리라. 하지만, 실제로는 땅은 움직일 뿐만 아니라 꺼져 없어져버릴 수도 있다. 일본에서 열흘 전에 일어난 지진의 여파로 해안선이 12㎝ 물러앉았다는데, 그렇게 잃은 땅의 넓이도 계산해보면 상당할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에 일본처럼 지진이 자주 일어나지는 않지만 그럴 가능성은 언제나 있다.
땅이 움직인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화산이나 지진이다. 그런 소식을 들을 때마다 지구가 살아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제임스 러브록 같은 학자가 지구는 살아있고 꿈틀댄다고 이야기한 것이 아닐까 싶다. 그는 살아있는 지구에 ‘가이아’라는 이름을 붙였다. 움직이는 지구를 여러 가지 방법으로 연구할 수 있다. 지구의 표면에 있는 대기나 물의 움직임을 추적할 수도 있고 땅의 움직임과 그 속에서 일어나는 과정을 연구할 수도 있다. 영화 <단테스피크> (로저 도널드슨 감독, 1997)의 주인공 해리 달튼은 지구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연구하는 화산학자다. 땅 밑은 높은 압력 때문에 암석이 녹아 액체처럼 움직이는데 그것이 약한 지각을 뚫고 나오면 화산이 된다. 단테스피크>
화산학자는 상당히 위험한 직업이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산 곁에서 연구를 수행하니 화산이 폭발이라도 하면 곤경에 처하기 십상이다. 해리도 같이 화산을 연구하는 동료였던 약혼자 매리앤을 화산재에 묻었다. 하지만, 쇼는 계속되어야 하는 법. 그는 화산에 대한 연구를 계속한다. 해리가 조사를 위해 도착한 마을은 2만 명 이하의 인구가 사는 도시들 중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 중 하나로 꼽힌 단테스피크. 이곳의 시장 레이첼 완도는 단테스피크를 관광지로 개발하려는 백만장자와 유리한 계약을 앞두고 있다. 하지만, 해리는 이곳에서 화산 폭발의 징후를 여럿 발견한다. 온천욕을 즐기던 여행객들이 갑자기 높아진 물의 온도 때문에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나고, 대격변 이전에 일어나는 지질변형과 아황산가스와 이산화탄소의 방출을 목격하기도 한다.
해리와 레이첼의 로맨스, 이어지는 화산폭발, 주변 인물의 순교, 아이들과 노인을 구출하기 위한 주인공의 활약, 그리고 무사귀환으로 이어지는 이야기가 해리 역을 연기한 피어스 브로스넌이 007로 데뷔하기 위해 치르는 전초전처럼 화려하게 화면 위를 흐른다. 해리는 운이 좋아 화산폭발의 징후를 읽고 마을 사람들을 대피시켰지만 실제로는 화산 폭발을 예측하고 피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예측이 어려운 것은 화산 폭발을 동반하든 그렇지 않든 지진이나 해일과 같이 땅이 흔들흔들할 정도의 자연재해들 모두가 그러하다.
3월 25일, 일본의 중북부 노토 반도를 강타한 지진의 경우 일본의 지진 예측 시스템이 훌륭하게 작동해서 피해를 줄였다고 칭송이 자자하지만 지진 발생 전에 예측한 것은 아니다. 일본 기상청은 지진 발생 1분 만에 지진해일 경보를 발령했고 주민들을 고지대로 대피하도록 했다. 종전에는 지진해일 발생 후 3분이 지나서야 경보가 가능했다. 새로운 지진예보시스템 덕분에 600여 채의 집과 건물들이 무너질 정도로 강한 지진이 엄습했는데도 사망 1명, 부상자 200여 명으로 인명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 12년 전, 비슷한 규모의 한신 대지진이 6,400명이 넘는 희생자를 낸 것과 비교하면 장족의 발전을 했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아직도 지진해일이 다가오기 전에 미리 알아채는 방법은 없다.
왜 지진해일이나 화산과 같은 지구의 활동을 예측하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가? 그것은 지구 내부의 움직임에 대해서 아직 모르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지진해일은 한마디로 말해서 지구 내부의 에너지가 지표로 나와, 땅이 갈라지며 흔들리는 현상이다. 지층이 힘을 받으면 휘어지며 모습이 바뀐다. 그러다가 버틸 수 없을 만큼의 힘이 축적되면 지층이 끊어져 단층이 되고,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려는 반발력에 의해 지진이 발생한다. 그런데 이런 움직임을 관장하는 에너지의 움직임을 정확하게 포착할 수 있는 능력이 우리에겐 없다.
현재, 지구의 구조를 설명하는 가장 유력한 이론은 판구조론이다. 이에 따르면 지구의 표면은 평균두께 약 100㎞의 암석권 또는 판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것이 우리가 이야기하는 땅이다. 단단한 고체인 판 아래는 유동성이 있는 맨틀물질이라고 부르는 것이 움직이고 있다. 맨틀물질을 움직이는 힘은 지구 내부의 방사성 원소가 붕괴할 때 발생하는 열이다. 이 열이 불균일하게 분포되어 있어서 맨틀물질의 대류가 일어난다. 온도가 높은 쪽에서 낮은 쪽으로 픗껸걍珦?움직이고 그 위에 떠 있는 판도 그에 따라 이동한다.
맨틀대류 때문에 해저 산맥을 이루는 암석권이 쪼개지고 양쪽으로 벌어지는데 그 틈으로 마그마가 흘러나와 새로운 해양지각이 만들어진다. 이렇게 새로이 만들어진 판은 1년에 수 ㎝씩 이동해서 해구에 이르고 그 곳에서 대륙판 밑으로 비스듬히 가라앉으면서 맨틀 내부에서 다시 녹아 높은 온도의 맨틀물질로 환원된다. 판들 내부에서는 단층이나 습곡과 같은 지각 변형이 발생하는 일이 드물지만 움직이는 판과 판의 경계 지역에서 서로의 마찰에 의해 지진해일이나 화산활동과 같은 여러 가지 지질활동이 일어난다.
판과 판이 만나는 지점에 있는 일본에서는 지진이나 화산 활동이 잦고 유라시아판 내부에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지질 활동이 그리 활발하지 않다. 확률적으로 우리나라에서 지진으로 방출되는 에너지는 일본의 경우와 비교해서 수만분의 1 정도이다. 여러 가지 증거를 수집해서 지구 내부의 움직임을 판구조론으로 설명하고 있고 땅이 1년에 1~6㎝ 가량 움직인다는 것도 알고 있지만 현재 우리의 수준에서 그 뜨거운 에너지가 어디를 뚫고 솟아나올지는 알 수 없다. 일본 기상청이 발빠른 대처로 큰 공을 세웠지만 이번 지진이 잘 모르는 해저 지층에서 발생했기 때문에 긴장을 늦추지 못하고 있다. 매리앤이나 해리 같은 학자들이 해야 할 일이 아직도 너무나 많다.
■ 지구 표면은 불안한 퍼즐판-베게너 발표 '팡게아' 이론 50년 지나 빛 봐
눈치 빠른 사람이라면 세계 지도를 유심히 들여다보면서 이상한 점을 하나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수 천 ㎞나 떨어져 있는 두 대륙의 해안선이 퍼즐처럼 잘 들어맞는 것이다. 원래는 붙어있던 것을 떼어 놓은 것은 아닐까? 이런 의문을 가진 사람들이 오래 전부터 꽤 있었지만 땅은 움직일 수 없다는 생각이 워낙 강해서 20세기가 시작될 때까지 실제로 그런 의견을 내놓은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독일사람 알프레드 베게너는 그것이 단순한 우연이라고 볼 수 없다고 생각했다. 기후학을 공부했던 그는 기후 탐사를 위해 세계 각지에서 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대륙들을 잇는 퍼즐을 푸는 열쇠가 될 증거들을 수집했다. 첫 번째는 수 천 ㎞ 떨어진 대륙에서 같은 지층 구조가 발견된다는 사실이다. 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의 해안, 북아메리카의 애팔래치아 산맥과 스코틀랜드의 칼레도니아 산맥의 지층구조가 이어진다. 두 번째는 온대나 열대지방에서 빙하의 흔적이 발견된다는 것이다. 대륙이 위치를 옮긴 증거다. 세 번째는 남아메리카와 아프리카에서만 발견되는 화석과 같이 두 지역이 연결되어 있었음을 시사하는 화석이 존재한다.
1915년, 이런 증거들에 힘입어 베게너는 전 지구에 흩어져 있는 대륙들이 오래 전에는 하나의 대륙으로 합쳐져 있었을 것이라는 의견을 담은 책을 발간했다. 그는 이 책에서 수 억 년 전에는 팡게아라는 하나의 거대한 대륙이 있었는데 이것이 2억 5,000만 년 전부터 분리되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사람들은 베게너의 이야기를 믿지 않았고 땅이 움직이는 원인도 찾을 수 없었다. 50년이 더 흘러 제이슨 모건이 베게너의 대륙 이동설과 홈즈의 맨틀 대류설, 헤스와 디츠의 해저 확장설 등 기존에 제시된 다양한 이론들을 엮어 판 구조론으로 종합한 이후에야 사람들이 땅이 움직인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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