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책 만드는 일을 하지만, 내 어릴 적은 책하고 먼 생활이었다. 책은 교과서가 전부였다. 학교 갔다 오면 마루에 책보를 내던지고 들로 산으로 쏘다녔다. 봄기운이 쑥쑥 올라오는 이맘 때가 가장 신나는 계절이다.
겨울 내내 방구석에 웅크리고 있다가 개나리, 진달래, 산수유가 꽃망울을 터트리기 시작하면 마음은 온통 들로 산으로 가 있었다. 염소 끌고 냇가 풀밭으로 나가 마을 동무들과 씨름하고, 말 타기 하고 놀다 보면 금세 해가 넘어갔다. 소 먹일 꼴 베고, 토끼 풀 뜯고, 보리밭 밟아주다 보면 하루가 꼴딱 넘어갔다.
어른이 된 지금 봄이 오면 요즘 아이들이 안됐다 싶어 마음이 답답하다. 콘크리트 감옥 같은 꽉 막힌 도시에 사는 아이들에게 봄은 없다.
아이들은 창 밖에 봄이 와도 방 안에 처박혀 학습지를 풀고 텔리비전 보고 인터넷 게임에 빠져서, 교실에 갇혀 점수 따기 교과서 공부하느라, 방과 후에는 학원을 순례하느라, 꽃 소식이 코 앞에 다가와도 정녕 봄이 와도 봄을 못 느낀다. 이런 생활환경을 만든 어른들이 아이들에게서 봄을 빼앗아간 것이다. 아이들에게 미안하다. 아이들에게 속죄하는 마음으로 어린이책을 만드는 출판 일을 한다.
무엇보다 아이들에게 자연과 생명의 아름다움을 그림책으로 전해주고 싶었다. 특히 우리나라 금수강산의 아름다움과 거기 깃들어 사는 생명체들을 보여주고 싶었다.
자연 속에서 마음껏 뛰어 놀던 내 어린시절의 경험이 책 만들 때 가장 큰 밑천이 된다. 자연의 시간 속에서 놀면서 내 몸에 새겨진 감성은 나를 동심으로 이끈다. 어린이책을 만들지만 아이들에게 책 보라고 닦달하지 않는다. 틈만 나면 ‘아이들하고 산과 들로 나가자’ 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자연이 가장 훌륭한 책이다. 내 인생의 책은 자연이다.
정낙묵ㆍ보리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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