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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천덕꾸러기가 된 농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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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천덕꾸러기가 된 농업

입력
2007.03.29 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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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프랑스 중부의 농촌마을을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 부르고뉴 지방의 본(Beaune)이라는 작은 마을을 잊을 수 없다. 우리로 치면 시골 읍, 면 소재지 정도나 될까 하는 소도시다.

사방은 온통 지평선까지 끝간 데 없이 이어진 포도밭으로 둘러싸여 있고, 이 마을로 이어진 간선도로는 포도밭 사이로 난 오솔길같다. 하룻밤 묵었던 동네 한 가운데의 돌로 지은 2층짜리 호텔은 소박하면서도 파리 시내 별 다섯의 어느 호텔보다 깔끔하고 편안했다. 저녁에 호텔 식당에서 만난 마을 사람들의 여유로움은 전원의 삶이 이런 것이구나 생각하게 했다.

선진국과 후진국을 가르는 잣대가 여럿 있겠지만 도시와 농촌의 격차를 느낄 수 없다는 것이 그 중의 하나일 것이다. 삶의 방식은 도시와 농촌이 다를 수 있지만 삶의 질과 수준은 별반 차이가 없다.

이 잣대로 볼 때 우리는 아직 한참 후진국이다. 세계 10위권의 경제규모를 자랑하고, 선진국 모임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한 지도 10여년이 지났지만, 농촌 현실을 돌아보면 공허하기 짝이 없다.

1994년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 타결 이후 농업개방이 본격화하면서 정부는 농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수 십조원을 투입했다. 한ㆍ칠레 FTA가 체결된 후에는 FTA지원특별법이 만들어졌고, 2004년부터 2013년까지 119조원 규모의 농업ㆍ농촌 투융자 계획도 추진되고 있다. 하지만 농업 경쟁력은 크게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고, 여전히 개방에 가장 취약한 분야로 남아 있다.

프랑스 농촌이 잘 사는 배경에는 강력한 생산자 조직의 역할이 있다. 와인이든 사과든 생산자조직이 그 지역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의 품질과 유통과정을 철저히 관리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받고 있다. 생산자 조직이 강하다 보니 우리나라와 같이 유통업자가 중간에 폭리를 취할 수 없어 농민과 소비자 모두에게 이익이 돌아간다.

정부의 역할도 중요하다. 일찍부터 와인의 품질관리 제도를 도입해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는 것이 그 예다. 미국 등의 농업개방 요구에 맞서면서 농업을 식량안보 또는 환경보전 차원에서 보호하고 있는 점도 두드러진다.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생산자 조직으로 수 십년 간 정부의 영향력 아래 있었던 농협은 농민과 유리된 공룡조직이라는 비판을 받아왔지만, 그 동안 개혁성과는 미미하다.

정부도 농협 개혁을 오랫동안 말해왔지만, 근본적인 대책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 쌀 개방 압력이 커지면서 전국적으로 쌀 브랜드화가 유행처럼 번졌다. 하지만 정부는 엄격한 품질관리를 통해 브랜드를 차별화하는 데 실패했다.

그런데도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20일 농어업 분야 업무보고 자리에서 농업의 실패가 농민들만의 책임인 것처럼 말했다. "농업 GDP의 42%를 정부가 투자하는 기반 위에 서 있는데 농정불신을 얘기할 수 있나. 염치도 없다"고 농민들을 비난했다.

김영삼 정부 때 45조원의 농어촌 구조조정자금 집행 실패사례가 말해주듯이 농정 불신은 정부의 예산 집행이 적어서가 아니라, 예산을 써야 할 곳에 제대로 쓰지 않고 규모를 내세워 생색만 내는 데서 비롯된다.

농업도 개방의 대세를 피할 수 없다. 농민들 스스로도 생각을 많이 바꿔야 한다. 하지만 농업을 천덕꾸러기 취급해선 안 된다. 경쟁력이 없다고 공장 폐쇄하듯이 간단히 내칠 수 있는 산업이 아니다.

김상철 경제부 차장대우 sc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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