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과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의 29일 전화회담을 계기로 노 대통령이 사실상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타결 의지를 굳힌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협상단은 2, 3가지 쟁점별로 타결ㆍ결렬 시나리오를 올리겠지만 노 대통령은 이중 쇠고기 등 일부 농산물 분야의 희생을 전제로 자동차 등을 얻는 타결 시나리오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양국 정상의 자세한 통화 내용은 알 수 없지만 “쇠고기 시장 개방은 미국 외교정책의 중요한 부분”이라고 언급한 부시 대통령의 이전 발언으로 볼 때 한미 정상은 쇠고기를 FTA 타결의 핵심 요소로 판단했을 것으로 분석된다. 이에 따라 노 대통령이 쇠고기 관세 철폐뿐 아니라 쇠고기 검역 문제까지 미국에 양보할 용의가 있는지가 관심의 초점이 되고 있다.
30일 노무현 대통령이 귀국하면 집무실에는 쇠고기 관세 철폐, 검역, 농산물 개방폭을 기준으로 한미 FTA의 타결ㆍ결렬을 가를 협상경과 보고서와 2, 3개의 결재안이 오를 것으로 보인다. 한미FTA 장관급 회담에서 거르고 남은, 노 대통령의 결단만 남은 “한두 개 꼭지”다. 결재안에는 한미 양국이 더 이상 양보할 수 없는 마지노선이 담겨 있다.
지금까지의 협상 상황과 한미 정상간 전화회담 내용으로 볼 때 결재안에는 한국의 피해를 대표하는 쇠고기 등 농산물, 한국의 이익을 대표하는 자동차가 주 메뉴로 오를 가능성이 높다. 이익과 손실을 합쳐 전체적인 균형을 찾기 위해서다. 정부는 줄곧 “농업은 다른 분야와 연계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노 대통령이 결단해야 하는 상황까지 되면 사실상 농업은 자동차 등과 연계돼 희생될 가능성이 높다.
한국 협상단은 이미 쌀을 제외한 주요 농산물을 어느 정도 희생하는 방안을 마련한 상태다. 쇠고기(40%) 돼지고기(25%) 오렌지(50%) 사과(45%) 등 주요 농산물의 관세 인하 또는 철폐는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 다만 관세 인하나 철폐 시기를 얼마나 늦추느냐가 쟁점이다.
만약 미국이 즉각 또는 5년 내 관세 철폐와 같은 요구를 철회하지 않을 경우, 노 대통령은 한국 농업의 쇠락과 한미FTA 결렬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 협상단은 일정 물량만 관세를 인하하는 저율할당관세(TRQ), 수확기에 관세를 올리는 계절관세 등 완충장치를 마련했지만, 결국 한두 가지 농산물의 개방 여부는 노 대통령 손에 달렸다.
반면 자동차가 ‘딜 브레이커’(협상결렬요인)가 될 가능성은 멀어지고 있다. 미국은 ‘승용차 관세 3년내 철폐, 상용차 관세 10년내 철폐’라는 자동차 개방안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한국 협상단은 검토해볼 만한 내용으로 판단하고 있다.
한국 측은 애초 승용차ㆍ상용차 관세 모두 3년내 철폐(즉시 철폐 포함)를 요구했다. 한국 측은 관세 철폐 시기를 더 앞당기기 위해 지적재산권 등 다른 쟁점과 연계한 빅딜을 시도하며 최종안을 마련, 대통령 결재를 받는다는 입장이다.
마지막 복병은 쇠고기 검역 문제다. 미국은 뼈까지 포함한 쇠고기를 수입하도록 위생검역 기준을 완화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한국 측은 5월 국제수역사무국(OIE) 총회에서 미국이‘광우병 통제국’ 판정이 내려진 다음에야 검토할 사항이라고 맞서고 있다.
부시 대통령과의 전화 회담에서 “최대한 유연하게, 균형된 이익이 되도록 해야 한다”는데 공감한 노 대통령이지만 쇠고기 검역문제를 어떻게 풀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쇠고기 검역 문제가 FTA의 의제가 아니라는 점을 인정하는 미국이지만 막판에 두 사안의 연계안을 제시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노 대통령은 30일 귀국후 집무실 책상 위에 있는 서류 가운데 한미FTA 타결 쪽에 무게를 둔 결재안에 사인할 가능성이 높지만, 쇠고기 문제 앞에서 다시 한번 멈칫할 가능성도 있다.
이진희 기자 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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