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의 매력에 빠져든 이유는 그의 작품이 현실에서 5㎝ 정도 붕 떠 있는 듯 했기 때문이다.” 소설가 김중혁은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ㆍ58)의 세계에 연루돼 들어간 이유를 그렇게 밝혔다.
1989년 한국서 ‘7-eleven’이 개점한 이후 와인 수요 급증, 패션에 대한 관심 등 386세대에서 비롯된 일련의 문화적 변동과 맞물려 온 그의 <상실의 시대> <해변의 카프카> <노르웨이의 숲> 등이 갖는 의미는 어디에 있나. 노르웨이의> 해변의> 상실의>
스파게티 요리를 즐기고, 재즈와 요리 등 문화의 힘을 통해 ‘부드럽고 둥글게’ 한국인의 정서를 잠식해 온 ‘베스트셀러 작가’ 하루키에 대한 학술적 조망이 이뤄진다.
고려대와 일본 도쿄(東京)대의 합동 세미나 <동아시아에서 무라카미 하루키를 읽다> 가 30, 31일 이틀 동안 고려대 백주년 기념관에서 열린다. 프란츠 카프카상을 수상하고 노벨 문학상 후보로 거론됐으며 그의 문학을 전문적으로 번역하는 사람들의 심포지엄이 열리는 등 일본의 문화적 자부심을 상징하는 하루키는 어떻게 읽힐 수 있나. 동아시아에서>
김춘미 고려대 일본학연구소장을 비롯해 고모리 요이치(小森陽一) 도쿄대 교수, 친캉 베이징(北京) 일본학연구센터 교수, 김중혁 작가 등이 주제 발표자로 나서는 이번 세미나는 일본 문화의 영향력이 문학의 차원에서 집중 토론된다는 점에서도 주목 받고 있다.
하루키는 다자이 오사무(太宰治), 미시마 유키오(三島由紀夫), 아베 고보(安部公房) 등 일본의 대표 작가가 달성하지 못한 한반도 상륙을 성공리에 이뤄낸 유일한 작가로 평가 받고 있다.
이번 세미나를 주관한 김춘미 소장은 이 자리에서 “일본 문학에 대한 거부감이 강한 한국에서 하루키의 소설은 일본의 감성을 대표하는 문화 상품”이라며 “불편한 과거의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는 한국 사회로서는 일본 문물의 유입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고 밝힌다.
또 고모리 요이치 교수는 “10여년의 경제적 침체, 빈부 격차의 확대를 겪고 있는 일본에서 하루키는 일본의 자부심이자 문화 내셔널리즘의 중심”이라고 규정하는 한편 “국가적 침략 전쟁 하의 조직적 강간에 대한 기억을 소설 텍스트를 통해 소거하려는 <해변의 카프카> 는 오히려 가해자들에게 치유의 기능을 한다”고 비판의 끈을 늦추지 않는다. 해변의>
역사 인식상의 문제점에도 불구, 하루키는 현재의 한국인에게 커다란 정서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그가 한국에 본격 소개된 것은 1989년 <노르웨이의 숲> 이 <상실의 시대> 라는 제목으로 번역되면서부터. 이 책은 지금까지500여 만부가 팔리며 ‘현상’의 도래를 알렸다. 상실의> 노르웨이의>
따라서 하루키 현상을 학술적으로 다루는 이 같은 자리의 필요성은 줄곧 제기돼 왔다. 유종호 연세대 국문과 석좌교수는 지난해 한 논문에서 “가장 감명 깊거나 흥미롭게 읽은 책으로, 상당수의 학생들이 하루키의 소설을 들고 있다는 점은 곤혹스럽고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해 <무라카미 하루키론> 을 쓴 평론가 고모리 요이치는 “하루키의 시선에는 역사의 피해자로서 한국인이나 중국은 배제돼 있다”고 한계를 지적한 뒤 “일본 사회에서 대중화한 무의식적 욕망을 그리고 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무라카미>
김춘미 소장은 “한일간 문화 마찰의 존재 양식을 명확히 하는 일은 한국에서 일본 연구의 학문적 객관성을 보장하는 중요한 작업”이라며 “소수자ㆍ약자에게 하루키의 시선이 돌려질 때, 한 시대의 획을 긋는 문화 표상으로서 하루키의 존재 의의는 클 것”이라고 아쉬움을 표했다.
한편 이튿날은 오전 10시~오후 6시 유재진 고려대 일본학연구센터 연구교수의 사회로 한ㆍ중ㆍ일 연구자들의 합동 연구 결과가 발표된다.
장병욱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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