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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큰소리가 여론 독식하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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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큰소리가 여론 독식하는 사회

입력
2007.03.28 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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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ㆍ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반대하는 시위대가 연일 시내를 메우고 있다. 여기에 여당 출신 의원들까지 항의 시위를 시작했다. 언론은 이러한 주장이 마치 사회 여론을 대표하는 것처럼 보도한다. 그러나 실제로 대다수 국민들은 이러한 예민한 사안에 대해 함구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 침묵하는 다수의 마음 읽어야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서 침묵은 동조를 의미하고, 큰 소리를 내는 쪽이 이긴다는 잘못된 통념이 전수되고 있는 것 같다. 말조심 할 수 밖에 없었던 군부 독재 시절의 유산인지는 모르겠지만, 대다수의 온건한 생각을 가진 국민들은 그냥 말없이 자신의 생각을 품고 있는 습성을 지니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이들의 의견은 그냥 묵시적 동의가 되어 버리거나 있으나마나 한 것으로 간주되기 십상이다. 더 나아가서 이러한 큰 소리 통념의 사회적 전수는 가능하면 반대 의견은 제시하지 말라는 암시로 발전된다. 그래서 다들 반미, FTA, 대북정책, 부동산 등에 대해서는 그저 가능한 아무 말 않고 있는 게 상책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실제로 한 커뮤니케이션 이론은 우리가 무슨 의견을 말하고자 할 때에는 자기 주장이 다른 사람에게 받아들여질 가능성이나 강도를 따져서 하게 된다고 설명한다. 다시 말해서 내 의견과 비슷한 내용이 주류가 되면 자신 있게 이야기 하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의견을 표현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결국 사회에서 우세한 의견은 실제보다 더 강하게 나타나고 주위의 압력을 받는 열세한 의견은 상대적으로 위축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현상은 특히 눈치를 중요시 여기는 한국 사회에서 더 강하게 작용할 여지가 많다. 큰 소리 치는 사람들 앞에서 눈치 없게 반대했다가는 아예 조직에서 외면당할 수 있다는 상식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 사회는 큰 소리 내는 세력이 쉽게 사회 여론을 독식하고, 무언의 압력을 통해 눈치 있는 대다수의 온건한 의견들을 자연스럽게 침묵하게 할 수 있다.

한국 사회의 큰 소리 통념은 민주화 과정에서 무조건적으로 허용된 참여의 제도화가 낳은 한 부작용이라고 볼 수 있다. 오랜 군부 독재에서 벗어난 우리 국민에게 목소리를 내서 요구하도록 허용하는 일은 최우선적으로 보장되어 왔기 때문이다. 이러한 참여능력의 강화는 변혁이 필요했던 민주화 초기에는 맞는 말이지만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현 시점에서는 교정될 필요가 있다.

주요 정치사회적 쟁점들이 큰 소리부터 내고 보는 강경 세력들에 의해 독점 되면, 그 결과는 대다수가 불만족하는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즉, 양 극단의 원심적 갈등 상황에서 한 쪽이 승리하면, 그 결과가 어느 쪽이건 상관없이 행복해 할 사람은 그 자신들 뿐이라는 것이다.

● 건강한 보수, 진정한 진보 기다려

이러한 침묵하는 다수의 불만이 쌓이면 엄청난 정치적 냉소주의나 소외감으로 발전하게 된다. 따라서 이제 정치권은 이들 침묵하는 다수의 마음을 읽어야 한다.

이들의 합리적 토론과 의견이 국정과 연계되어 실질적인 통치력이 확보되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큰 소리 내는 세력은 사회의 변혁을 주도할 수 있을 지는 몰라도, 사회를 유지하고 제대로 돌아가게 하는 것은 그들이 아닌 침묵하는 다수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 건전한 보수, 진정한 진보는 없는가”라는 물음이 빈번하게 들리는 것은, 바로 이런 양 극단의 큰소리가 사회의 전부인 것처럼 비춰진 우리 현실에 대한 탄식이다.

분명, 지금 우리 사회는 정상적인 보수와 진보를 필요로 하고 있다. 이들의 상호 운동을 통해 시너지 효과가 발휘되어 국정의 선진화를 향해 달려가야 한다.

그간 우리의 건강한 보수, 진정한 진보는 사회 저변에서 침묵하며 꾸준히 체력단련을 해 왔으리라 믿는다. 이제는 그들이 의미 있는 소리를 내고 정치권은 그 소리를 들어야 할 때다.

곽진영 건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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