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을 탈당한 손학규 전 경기지사가 보수와 진보 진영의 양극 대립을 지양하는 제3의 길을 모색한다고 하지만, 대선 구도의 현황은 결국 인물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것 같다. 손 전 지사가 탈당하자 범 여권이 즉각 환영했던 것도 인물난을 해소해 활기와 살 길을 찾을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신을 가다듬은 불과 며칠 뒤 분위기는 달라졌다. 손 전 지사 역시 범 여권과는 손을 잡을 생각이 없음을 점점 분명히 하고 있다. 하긴 정책적 차이로 따져 봐도 양측의 접점이 쉽지 않음이 금세 드러난다. 며칠 전 신문은 이를 두고 "정책궁합이 안 맞네"라고 썼다.
■ 단적으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한 찬반 입장이 두드러지게 갈라지는 지점이다. FTA는 비단 이들 사이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 진행ㆍ처리 방향이 선거 일정과도 겹쳐있어 선거를 관통할 이슈로 지적된다.
대선 쟁점으로 정책의 문제가 이렇게 첨예했던 적은 없는 것 같다. 정책을 중심으로 이념과 세력이 경쟁하고 대결하는 선거과정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FTA 문제 만큼은 정권과 야당, 친노(親盧)와 반노(反盧), 범 여권과 야당, 진보와 보수 등의 여러 전선이 마구 뒤섞이고 중첩돼 정책 선거의 의미로만 해독하기도 어렵게 돼 있다.
■ 사실 대선에서 각 후보의 정책 공약은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그럴듯한 내용이기 십상이다. 선거가 치열할수록 후보 간 이념적 차별성은 줄어들고 공약 역시 서로 닮아가는 경향으로 흐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상대방 표를 내 쪽으로 빼앗아 지지를 넓히려다 보니 생기는 현상이다. 반면 내 표 지키기를 철저히 하는 전략도 있다. 2000년 미국 대선에서 조지 W 부시의 승리가 그런 경우였다. 자신의 색깔을 더 진하게 채색하는 것으로 정체성을 다졌다.
■ 이념은 정책으로 구체화한다. 정책은 이념의 도구다. 1994년 미국 의회선거는 대표적인 정책선거의 개가로 꼽힌다. 당시 공화당은 '미국과의 계약(Contract with America)'이라는 정책 패키지를 내걸어 의회를 장악, 지난 해 민주당에 탈환 당하기까지 12년 동안 의회를 지배했었다. 대선이 8개월 여 남았지만 아직 정책 선거의 면모와는 거리가 멀다.
지금까지 나온 정책 구상들 정도로는 "어린이 종합선물 세트 같다"는 혹평이 따른다. 중도가 강조되고 부각될수록 정책적 수렴 현상은 더할지도 모른다. FTA가 빅 이슈이긴 하지만, 진정한 정책 선거 보다는 오히려 '정치 선거'를 촉진할 것 같다.
조재용 논설위원 jae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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